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4월 말에서 6월로 연기됐다. 정치권 일부에서 ‘5·31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달라고 했던 요청이 받아들여진 셈이다. 아울러 김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경의선 철도 이용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철도 운행은 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군사적 안전보장문제 등 남북 협의사항이 아직도 남아 있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곧 열릴 예정인 장성급 회담과 장관급 회담에서의 논의도 가능하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철도나 자동차로 왕래할 수 있게 된다면 남북 IT 분야 교류·협력 활성화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은 방북할 때 베이징 또는 선양으로 가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경비 면에서 많은 부담이 된다. 중국에 들어가는 비자를 받아야 하고 북한 비자를 받기 위해 중국에서 하루를 묵어야 한다. 이러한 불편은 앞으로 평양과학기술대학의 교수 유치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고 남북의 상호 번영과 평화를 구축해 한반도 통일환경을 조성하고 북한 사회의 국제화를 도모하며 북한에 필요한 정보통신기술(IT), 농생명과학, 국제무역 등의 전문기술인력 양성을 지원하고 국제교류 및 진출의 기반이 되는 대학 내 산학협동체제를 개발할 목적으로 2001년 3월 1일 설립된 평양과학기술대학이 드디어 내년 봄에 개교하기로 결정됐다. 지난 1월 말 학사팀을 인솔하고 평양을 방문한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과 전극만 북한 교육성 부상은 내년도 신학기가 시작되는 4월 1일을 개교일자로 확정한 것이다.
평양과기대의 개교는 북한의 IT 분야 활성화에도 커다란 의의가 있다. 북한이 경제 부흥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IT 분야를 택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능한 IT 기술자가 많이 필요하며 특히 국제 감각이 있는 인재 양성이 필수적이다. 물론 북한에도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IT 인재 양성 기관이 여럿 있다. 그러나 이들 대학의 교육 여건은 열악하다. 특히 첨단 실험·실습장비는 매우 부족하며 교수들도 최첨단 기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기에 평양과기대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이다.
평양과기대는 1단계로 IT 대학원, 경영대학원, 농업식품대학원과 국제(기초)학부를 개설하고 2단계로 보건대학원 등을 추가할 예정이다. 지난 1월 말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대표자회의에서 논의된 교육과정에서 가장 무난하게 합의된 부분이 정보통신 분야의 교육과정으로 전반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것은 IT 중요성에 대한 남북의 이해가 같고 그동안 비교적 활발했던 남북 IT 교류·협력 덕분이라 본다.
그러나 평양과기대가 성공적으로 개교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금 한창 진행중인 건축이 개교일 전에 마무리돼야 한다. 또 질 높은 교육을 위한 첨단 실험·실습장비가 도입될 수 있도록 제도적·법적인 난관을 뚫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우수한 학생과 교수의 유치다. IT 분야의 우수 학생은 앞서 언급한 대학졸업자 중에서 선발하면 될 것이다. 관건은 교수 유치다. 평양과기대 설립 당시 합의한 바에 따르면 교수진 대부분이 남한의 대학교수로 구성될 예정이다.
지난 5년간 북한의 평양정보쎈터와 IT 분야 공동연구를 해오면서 여러 차례 평양을 방문해 본 내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남한에서 간 평양과기대 교수들이 최고의 능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필요할 때 평양과 남한을 쉽게 왕래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개성공업지구까지는 현재 육상으로 왕래할 수 있다. 평양과기대에서 개성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도 안 걸린다. 이를 감안할 때 평양과기대 교수가 개성을 거쳐 육로로 평양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 교수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욱이 김 전 대통령과 같이 경의선을 이용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통일부 신언상 차관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남북 간 도로 및 철도 개통을 위한 회담을 개성공업지구에서 곧 열자고 북한에 제안했으며 3월 남북 간 철도 시범 운행도 의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루빨리 서울·평양 간 왕래가 개성을 거쳐 육로로 이뤄져 평양과기대 교수 유치와 IT 교류·협력에 커다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찬모 포항공과대학교 총장 parkcm@pos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