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글로벌IT기업 변신 서두른다(4)시장 파이를 키우자

 한 글로벌 IT기업 영업사원은 최근 열린 싱가포르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의에서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나만 아니면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로 회의해도 무리가 없겠더군요. 중국·대만·홍콩에서 온 비즈니스맨 대다수가 중국어를 구사합니다. 국내 시장이 줄면 아·태지역 회의가 중국어로 진행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습니다.”

 글로벌 IT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시장 규모(파이)’를 키우는 일이 발등의 불이다. 국내 시장은 더는 저절로 열리는 ‘이머징 마켓’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인구 1억5000만명을 바탕으로 한 ‘세이프 마켓’도 아니다. 질적·양적으로 시장을 키우지 않으면 국내는 어정쩡한 위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시장을 키우는 가장 낮은 단계는 이미 있는 제품을 제대로 파는 일이다.

 한국EMC의 한 임원은 “영업사원이 수억원짜리 시스템을 파는 데 익숙하니 수백만원짜리 소프트웨어나 솔루션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시장은 변하는데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비단 이 회사뿐만이 아니다. 다국적 업체 대부분이 인수합병을 통해 새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이를 전담할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 실적을 따지다보니 장기적으로 팔릴 제품보다는 당장 팔리는 제품 쪽에 인력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영업사원도 당장 인센티브가 잘 나오는 제품을 팔기를 원한다.

 새로운 시장을 위해서는 먼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영업 관행을 손봐 비용을 줄이는 일도 적극적인 시장창출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잘못된 관행이 바로 벤더에서 총판이나 딜러에 시스템을 대량으로 떠넘기는 ‘밀어내기’다. 앞뒤 안가리는 과다한 출혈경쟁도 재고해봐야 한다. 한국IBM은 한때 공공 영업에서 큰 손실을 입었지만 영업 건전화로 더 큰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시장 규모)보다는 아예 마케팅·영업 등 새로운 개념에서 지사의 사업 방향을 맞추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강세호 한국유니시스 사장은 “국내 지사는 다른 나라 다국적 지사의 롤(역할) 모델을 해야 한다”며 “신제품 성공 론칭 사례를 만든다면 전세계 지사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시장을 키우기 위해서는 변화와 전략이 필요하다. 지사장의 생명줄이 단기 실적에 좌우되는 상황에서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몇년 동안 다국적 IT기업이 공동으로 시장을 키우자고 외치면서도 ‘윈백’ 등으로 포장해 ‘제로섬 게임’을 벌여온 것도 이 때문이다.

 ‘관성의 법칙’만 따라서는 절대 시장은 커지지 않는다. 이제 글로벌 IT기업도 3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 전략의 묘수가 필요한 때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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