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으로 떠나는 여행]#9

‘하드 SF’와 ‘사이언스 팬터지’ 우리들이 흔히 상상 과학(SF)이라 얘기하는 장르는 다시금 다양한 분야로 나눠진다. ‘관절에서 간헐적으로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가만히 서 있던 갑옷 무사는 돌연 움직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달려 나간 증기 전차가 불을 뿜고 증기병이 응사하는 가운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비행병이 던진 폭탄이 유리창을 산산이 날려버린다….’오랜 옛날 누군가가 난로 위에서 끓는 주전자를 보며 ‘증기의 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전자의 뚜껑을 들썩거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증기의 힘은 오래지 않아 거대한 강철의 마차를 끌고 질주하도록 만들었고, 물레방아나 풍차의 도움 없이 하루 종일 끝없이 작동되는 자동 기계를 탄생시켰다. 바로 산업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세계는 굴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와 하얀 증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가스등이 나오고 비행선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가운데 가스등의 아련한 불빛을 뚫고 괴도 루팡이 활약하고 셜록 홈즈가 사건을 추적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동력은 보다 편히 사용할 수 있는 내연 기관으로 변화됐다. 비록 증기의 시대는 사라졌지만 가스등과 증기로 가득한 그 시대의 낭만은 지금도 살아남았다. 바로 ‘스팀 펑크(Steampunk)’라는 이름의 상상 과학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스팀펑크’는 최근 국내 업체가 개발한 ‘네오스팀’이라는 온라인 게임으로 다시금 눈길을 끌고 있다. 오래전-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세가사의 ‘사쿠라 대전’이나 아사미아 키아씨의 ‘쾌걸 증기탐정단’ 그리고 작년에 국내에서도 개봉되었던 -그러나 만화의 극장 개봉은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 ‘스팀보이’ 등을 통해서 친숙한 ‘스팀펑크’는 본래 다른 장르였던 사이버 펑크와 증기를 뜻하는 스팀을 합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증기 엔진의 발전이 극에 달하고 있던 산업 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만일(IF) 이러했다면(THEN)’을 현실화시킨 이 작품은 18~19세기라는 독특한 시대에 당시의 기술을 보다 발전시킨 새로운 가능성(그리고 때로는 마법이나 영력과 같은 신비한 힘)을 부여함으로서 탄생한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디지털화된 문자들이 넘쳐나는 것이 아니라 구식의 문자판이 돌아가고 이른바 신사 숙녀라는 이들이 고풍스러운 옷을 입고 가스등 밑을 걸어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증기 엔진 특유의 둥글고 육중한 동체의 기계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다.

컴퓨터와 로봇이 생활하는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라 어딘지 친숙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스팀펑크’에는 숨어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사이버펑크’나 ‘하드SF’가 지양하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숨겨져 있지만 콘크리트와 네트워크에 둘러싸여 인간으로서의 느낌조차 자각하기 힘든 미래의 이야기와는 다른 점에서 ‘스팀펑크’에는 흥밋거리가 있으며 그만큼 즐거운 것이다.스팀펑크라는 말의 어원이 되기도 했던 사이버펑크. ‘블레이드러너’를 시작으로 ‘매트릭스’같은 다채로운 작품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사이버 펑크는 주로 증기 시대를 무대로 과거의 낭만과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스팀펑크와는 달리 바로 지금의 현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미래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현재의 과학 기술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응용하면서 이야기는 딱딱하다는 수준을 넘어 골치 아픈 지경에 이른다. 특히 극단적인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분야에 이르게 되면 도대체 뭐가 뭔지 헤맬 정도다.

이를테면 해리슨 포드 주연의 명작 ‘블래이드 러너’에서 주인공은 부족한 노동력을 해소하기 위해 개발된 인조인간 레플리컨트를 확인하고 이들을 사냥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 블레이드 러너다. 레플리컨트는 수명이 인간보다 훨씬 짧지만 보다 ‘인간적인’ 활동을 위해서 그들에게는 감정이 주어지고 심지어 거짓 기억까지 주어진다.

그리하여 영화 속에서 레플리컨트는 인간적이고 그들을 쫓는 주인공 블레이드러너 쪽이 도리어 기계와 같은 느낌을 주면서 관객를 고민하게 한다. ‘사이버 펑크’의 원전이자 일종의 성서라 할 수 있는 ‘뉴로맨서’는 그런 면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윌리엄 깁슨이라는 작가에 의해 완성된 이 작품은 다국적 기업들과 사이버 공간을 통해 사실상 국가라는 존재가 유명무실해진 미래를 다루고 있다.

현재의 네트워크 사회를 가장 잘 예지했다고 할 만한 이 작품에선 돈이 필요할 경우 자신의 장기를 팔고 인공 장기로 갈아치우곤 하며 이미 죽은 인간이 컴퓨터 속에 기억으로 남아 ‘생활’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그야말로 현실과 비현실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사이버 펑크’는 보여주는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토탈리콜’의 원작자인 필립 K 딕을 거쳐 윌리엄 깁슨에 의해 탄생한 사이버펑크의 개념은 ‘공각기동대’나 ‘아미테이지 더 서드’ 그리고 ‘매트릭스’나 ‘13층’ 같은 수많은 작품에 계승되었다.

이들 작품 속에서 인간은 로봇과 구별되지 않는다. 또 현실은 가상 현실과 구분할 수 없으며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실례로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껍질 속의 영혼)’의 주역인 모토코는 뇌마저도 모두 기계로 바꾸었기 때문에 그녀 자신이 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곤 한다.

물론 그녀 자신은 ‘고스트’라 불리는 영혼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라 생각하지만 때로는 그것마저 가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네트 상에서 탄생한 생명체와 융합한 그녀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아이도 어른도 아니다.

아니 심지어 인간인지조차 확실치 않다.(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어린아이로 등장하지만 원작에서는 남자의 몸 속에 들어간다.) ‘사이퍼펑크’의 사실적인 설정은 가상 현실이나 기계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쿼런틴’이라는 작품을 보면 양자 역학으로 인해 우리의 세계는 매 순간 평행 세계가 발생하며 각기 수많은 삶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나의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죽었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세계 중에서 하나 만이 선택되어 존속하게 되는데 선택 이전의 상황에서 주인공은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있기도 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이버펑크’가 놀라운 점은 나오는 이야기들이 이미 현실화되었거나 앞으로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닷핵’에서 나오는 것처럼 현실과 구별하기 어려운 온라인 게임은 등장하지 않았고 기계의 몸은 아직 인간의 팔다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지 못하지만, 현재의 기술을 바탕으로 예측되는 미래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이다.‘하드SF’가 어렵다면 ‘사이버펑크’는 더욱 난해하다. ‘공각기동대’처럼 쉬운 작품조차 골치 아프다며 외면하는 이들이 속출할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미래의 세계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우주 저 광활한 ‘최후의 신천지’를 무대로 한 모험 이야기이다.

마치 서부 활극을 우주로 옮긴 것 같다고 일컬어지는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로 그것은 ‘사이퍼펑크’나 ‘스팀펑크’에 비해 훨씬 먼저 등장한 SF의 대표적인 갈래다. 과학적인 설정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과 영웅담’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는 그로 인해 ‘하드SF’팬들에게 외면을 받기도 했다.

물론 ‘스페이스 오페라’에서도 과학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거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일은 너무도 많다. 이를테면 ‘카우보이 비밥’에서 등장하는 위상차 공간 시스템(게이트)은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소재이며, 이를 이용해서 세균 병기를 퍼트리려는 테러리스트를 공간의 저편에 가두어 버린 일도 있을 정도다.

‘스타워즈:에피소드1’에서는 드로이드 제어함 자체가 이야기의 열쇠가 되었고, 클론 기술을 이용한 병사들이 음모에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듯 스페이스 오페라에서도 과학이나 기술은 매우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 하드SF처럼 노골적으로 표출되지 않고, 사이버펑크처럼 사람들의 의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캡틴 퓨처’니 ‘우주 순찰대(렌즈맨)’이니 하는 소설을 시작으로 ‘스타워즈’ ‘은하영웅전설’ ‘더티페어’ 그리고 근래에는 ‘카우보이 비밥’이나 ‘배틀스타 갤럭티카’ 심지어 ‘스타크래프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페이스오페라 작품들은 SF를 모르는 이들조차 열광하며 많은 팬들을 이끌고 있다.

인류의 마지막 신천지(The Final Frontier)에서 전개되는 영웅 이야기. 때로는 단순히 허황된 이야기라는 혹평을 받기도 하는 그런 작품이지만, SF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작품이라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하드 SF’‘사이언스 판타지’ 여기에 ‘스팀펑크’와 ‘사이버펑크’ ‘스페이스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상상 과학의 세계에는 너무도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한다.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종류가 준비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취향에 어울리는 작품을 찾기도 쉬운 것이다.

SF (상상 과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어렵다는 것부터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한번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려보길 권한다. 처음부터 ‘하드SF’나 ‘사이버펑크’를 접하기 어렵다고 해도 ‘스페이스 오페라’를 비롯한 간편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SF 칼럼리스트. 게임아카데미에서 SF 소재론을 강의 중이며, 띵 소프트에서 스토리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스페이스 판타지(http:www.joysf.com)란 팬 페이지로 유명하다.

- 영력이라는 판타지틱한 설정이 등장하지만, 증기로 가득한 모험담은 여기서도 빠질 수 없다. ‘사쿠라 대전’

- 증기를 이용해 하늘을 나는 비행병. 물론 이것은 스팀펑크 만의 상상의 산물이다.

- 쾌걸 증기 탐정단! 하얀 증기로 가득한 증기 도시에서 소년 탐정의 활약이 시작된다.

- 증기를 이용해 하늘을 나는 비행병. 물론 이것은 스팀펑크 만의 상상의 산물이다.

- 쾌걸 증기 탐정단! 하얀 증기로 가득한 증기 도시에서 소년 탐정의 활약이 시작된다.

- 영력이라는 판타지틱한 설정이 등장하지만, 증기로 가득한 모험담은 여기서도 빠질 수 없다. ‘사쿠라 대전’

- 검고 흰 연기를 뿜어내는 거체들이 질주한다.

- 임신이 가능한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아미테이지 더 서드. 그렇다면 인간과 로봇은 무엇이 다를까?

- 윌리엄 깁슨의 놀라운 세계는 코드명 J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인간은 모두 죽는다. 레플리컨트도 죽는다. 그렇다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블레이드 러너’

-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한 닷핵.

-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배틀스타 갤럭티카.

- 이 작품을 빼고 스페이스 오페라를 얘기할 수 없다.

- 재즈의 선율 속에 유쾌한 동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카우보이 비밥’

<전홍식 pyodogi@sfw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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