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外資 하나로의 승부

박병무 뉴브리지캐피탈코리아 사장이 5일 하나로텔레콤의 신임 대표로 전격 내정됐다. 마침내 장막 뒤에 있던 ‘주인’이 전면에 등장한 셈이다. 윤창번 전 사장의 경질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 현실화된 것이지만 의미는 남다르다. 우선 하나로텔레콤은 외국 자본이 직접 경영하는 사상 최초의 기간통신사업자가 됐다. 과거 영국 BT를 비롯해 뉴브리지, AIG 같은 펀드 등도 통신사업자에 투자했다. 하지만 이들은 순수 투자 혹은 전략적 제휴관계였다. 따라서 경영권은 확고하게 국내 주주들이 행사했다. 하나로처럼 경영권을 통째로 인수하고 아예 직접 경영에까지 나선 예는 없다. 하나로는 한국 통신사 초유의 역사를 쓰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기업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가 되었건 한국 국민의 이익에 봉사하고 경제에 기여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통신, 그것도 기간통신분야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안보적 고려에, 공익성도 포함된다. 통신주권과도 관련된다. 정부가 ‘기간통신사업자’라며, 어려운 ‘역무’라는 단어까지 동원해 별도 관리하는 이유다. 외국인 지분 한도를 정해두고 있는 원인도 된다.

 외자의 진정한 경영능력이 도마에 오른 것도 특이사항이다. 하나로 경영진의 핵심은 박 대표를 정점으로 영업을 총괄하는 고메즈 부사장과 재무의 제니스 리 전무다. 박 대표는 서울 법대 수석합격에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했다. 고메즈 부사장은 미국 유수의 통신회사에서 일했다. 여기에 글로벌 IT기업 출신 임원들을 최근 보강했다. 화려하다.

 그럼에도 주변에선 우려가 나온다. 영어 잘하기로는 국내 기업들 가운데 톱이겠지만 통신전문 인력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통신, 그까이꺼’라고 접근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아니다. 경영자들에겐 고도의 전문성과 정치력이 요구된다. 직접 규제산업이어서 정부 정책 대응 능력이 중요한 열쇠다. 업종 내 ‘패밀리 의식’도 강하다. 제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도 통신에 첫발을 들였다면 당분간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던 것이 기존의 ‘전통’이다. 정·관계 인사들을 만날 경우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것도 통신 CEO들이요, 경영진이다. 정책 이슈를 제기하고 의제를 선점하며, 때로는 언론플레이까지 감행한다. 정책과 규제라는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통신산업의 ‘숙명’ 탓이다. 하나로의 외자 경영진에겐 이 부분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40대 중반의 최고 경영자와 미국식 사고로 무장한 경영진에겐 고객과의 ‘소통’에 앞서 업의 특성과 ‘소통’하는 것이 더 난제가 될지 모른다는 의미다.

 주변 환경도 녹록지 않다. 4700억원을 쏟아부은 두루넷은 가입자가 계속 빠져 나간다. 지난해 줄잡아 30만∼40만이 줄었다. 하나로 역시 최근 2∼3개월간 가입자를 빼앗겼다. 반대로 파워콤과 케이블사업자(SO)들의 성장세는 무섭다. KT까지 총력 수성을 외치고 있다. 과장하면 하나로는 지금 안팎 곱사등이 신세다. 신규 투자 재원 조달도 버겁다. 시장의 싸늘한 눈길은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외자가 인수한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솔PCS에서 대박을 터뜨렸던 솜씨와 비교하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전 임직원이 전사(戰士)가 되자”는 박 대표의 새해 일성은 정확했다. 그간 하나로에 쏟아져온 가장 많은 비판은 ‘전략가만 많지 투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생존위협에 시달리는 후발사업자엔 투사가 필요하다. 가입자 유치는 전쟁이다. 외자 인수 이후 하나로의 ‘전투’는 목격되지 않았다. 감원과 이에 따른 조직의 무기력만 돋보였다. 그래서 박 대표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국계 투자펀드가 직접 경영까지 감당하고 나선 하나로에 숙제는 첩첩산중이다. 이제 박 대표를 비롯한 새로운 외자 경영진의 역량으로 답할 차례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