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조급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국민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공황이 쉽사리 치유되기는 힘들 것 같다. 특히 과학한국의 기치를 내걸고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향후 무슨 낯으로 세계 과학계에 학문적 성과물을 내놓고 설득할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궤변인지 모르지만 그나마 국민의 생명공학에 대한 지식수준이 세계 최고 반열에 올랐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줄기세포가 무슨 ‘고구마 넝쿨’인 줄 알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이제는 생명공학 분야를 전공하는 과학자가 아니라도 성체 줄기세포니 체세포 배양줄기세포니 하는 용어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고 DNA지문, 테라토마 검증, 계대배양 등의 전문 용어에 대한 생소함도 상당히 없어졌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장소에 가면 어려운 용어들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고 전문적 식견까지 내놓는 이가 한두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우석 교수 파문은 일반인의 생명과학에 대한 지식과 담론의 수준을 단숨에 세계 최고에 올려 놓았다. 사이언스지나 네이처지 등 세계적 과학저널이 자랑하는 권위의 실체에 관해서도 한번쯤 의문을 갖게 됐다. 물론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 때문에 지급해야 했던 비용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지만 어쨌든 과학의 대중화란 측면에선 기여한 바가 있다고 강변할 수는 있겠다.

 혹자는 이번 사건으로 줄기세포 연구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역으로 이번 사건을 꼼꼼하게 반추하면서 생명공학 분야에 새삼 관심을 갖게 된 젊은 과학도들이나 과학 꿈나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우리 과학계의 연구시스템 전반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번쯤 짚어볼 것은 과학계 저변을 확대하고 대중의 과학에 대한 이해도를 제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국민의 관심이 황우석이라는 스타 브랜드에 집중되고 정부의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뤄졌을 때에도 우리 생명과학계에는 성체 줄기세포, 수정란 줄기세포 등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다만 정부나 국민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미약했을 뿐이다.

 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기대감과 조급증을 일거에 해소하고 한국의 과학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데 과학적인 성과물이 뒷받침되는 스타 과학자의 마케팅 능력과 정치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스타 과학자를 떠받치는 과학 생태계 전반이 물흐르듯 움직이고 수량이 풍부해지지 않는 한 스타 과학자에 크게 의존하는 과학정책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삼각형의 꼭지점에 스타 과학자가 위치하고 스타 과학자를 떠받치는 과학 생태계 전반의 건강성이 삼각형의 밑변을 폭넓게 지탱해 주지 않는다면 스타 시스템은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과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 폭넓은 과학자 인력 풀, 미래 창의력을 책임지고 있는 과학 꿈나무들, 정부의 효율적인 과학자 지원시스템,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 등 과학 생태계 전반이 활성화되어야 비로소 스타 시스템은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래야만 과학한국의 진면목도 드러날 것이다.

 사실 스타 과학자에 대한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시스템과 과학 생태계 전반에 대한 지원 중 무엇이 중요한지를 비용·효과 측면에서 판별하기는 힘들다. 시류에 따라 중심추가 왔다갔다 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이는 교육계가 지난 수십년간 벌여왔던 수월주의 대 평등주의 간 논쟁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국민과 과학계는 그동안 과학 중흥의 붐을 이끌어 줄 스타 과학자를 고대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하나의 스타 과학자보다는 과학에 우직하게 헌신하는 수많은 연구자 집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정책 역시 대중적 차원의 효과보다는 과학 생태계 전반의 평균적인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과학적인 조급증은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고질병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장길수부장@전자신문, ks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