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진대제장관의 힘

정보통신부 장관의 ‘힘’이 이렇게 셌던 때가 또 있었나 싶다. 꽉 막혀 있던 지상파DMB폰 유통문제가 풀릴 기미가 보이는 것만 해도 그렇다. 엊그제 진대제 장관은 ‘지상파DMB폰을 유통하지 않으면 담합 행위로 처벌대상’이라며 이동통신사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여차하면 이동통신사 중심의 유통 관행도 바꿔버리겠다며 꽃밭에 불 지를 발언도 했다. 규제기관의 수장이 처벌 대상이라느니, 시장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판국에 과그르게 거스를 사업자가 어디 있겠는가.

 진 장관이 보여준 힘은 이뿐만이 아니다. 시민단체들과 함께 발신자번호표시(CID) 요금의 기본료 편입을 몰아붙인 추진력은 차라리 평범할 지경이다. 복잡하게 얽힌 방송·통신 통합규제기구 설립 논의를 내년 5월 이후로 넘겨버리는 뚝심도 보여줬다. 국정감사 때 불거진 통신 도감청 사안에 대해서는 소신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산 APEC 기간에 각국 정상들을 놀라게 했던 와이브로 서비스도 그의 리더십이 밀어붙인 결과다.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마다 고양이 계란 굴리듯 ‘IT외교’를 최고 성과로 올려 놓는 것 역시 그의 힘이다.

 진 장관을 겪어본 이들은 그 힘의 근원이 논리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는 데서 비롯된다고 전한다. 또 다른 이는 냉정하며 빈틈없는 성격에서 나온다고도 한다. 밀어붙일 때는 밀어붙이고 피할 때는 피할 수 있는 산법에 능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서로 상반되는 평가 같지만 결국은 모두 그의 대한 찬사들일 터다.

 아킬레스건이라고 했던가. 이런 진 장관이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IPTV 문제다. 따지고 보면 IPTV는 국책사업인 광대역통합망(BcN)에 맨 먼저 올려질 서비스다. KT가 내년에만 3000억원 이상 새돈을 쏟아붓기로 한 것만 봐도 그 중대함이나 시급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정대로라면 IPTV는 이미 시범서비스에 돌입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통신사업자인 KT가 ‘방송’에 나서는 것은 현행법에 저촉된단다. 정부 말만 믿었던 KT로서는 지금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인 지경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게 본질이든 본질이 아니든 IPTV 문제가 통신과 방송 간 영역싸움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위원회는 통신사업자의 ‘방송’ 진입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시민단체들의 정서를 대변해온 정치권 일부에서는 방송법 개정을 통해 IPTV를 규제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KT도 난감하겠지만 진 장관으로서는 더욱 곤혹스러울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IPTV 문제를 ‘거대자본(통신사업자)의 언론장악’ 차원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알 터다. 하지만 진 장관은 어쩐 일인지 IPTV 문제에서만큼은 그 특유의 추진력이나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 발짝 물러선 모습은 그가 방송계나 시민단체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법도 하다.

 이런 와중에 IPTV를 방송법으로 규제하자는, 이른바 ‘김재홍법’안 등이 튀어나와 장관을 더욱 좌불안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통부 관리들은 요즘 정치권 접촉에 부쩍 바빠졌다고 한다. ‘김재홍법’안 등에 맞불 놓을 정부안을 내겠다는 요량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2월 임시국회 때는 IPTV 관련법안만 3∼4개 발의돼 병합심리가 불가피해진다. 일단 물타기라도 해서 IPTV 규제법을 막아 보자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는 평소의 진 장관 스타일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소극적인 대처방안일 뿐이다. 지금 그의 진정한 힘은 IPTV 문제의 돌파구를 찾는 데 쓰여져야 한다. 그가 주창한 IT839 정책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지금 그의 힘은 필요하다.

◆서현진 IT산업부장jsuh@er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