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반도체강국을 위하여

 반도체 관련 국제뉴스의 한가운데는 항상 한국이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황의 법칙, 낸드플래시 등 우리나라와 관련된 반도체 뉴스는 비중 있는 기사로 처리된다. 그만큼 반도체산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산업의 전망에 대해서는 모두가 낙관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세계 넘버원을 다투는 한국의 반도체산업이지만 세계 30위권에 드는 반도체 장비업체가 우리나라 기업 중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머리는 엄청나게 크지만, 다리가 부실한 기형적인 구조가 한국 반도체산업의 진면목일 수 있다. 실제 정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 현재 반도체 제조장비 국산화율은 16%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부가가치가 높은 전공정 장비의 경우 국산화율은 8% 수준에 불과하다. 반도체 강국이면서도 반도체 장비는 전적으로 일본 등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 반도체산업의 현실이다.

 반도체 강국이지만 장비 강국이 되지 못한 것으로 인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본이 한국 반도체산업에 대항키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심지어는 한국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저하를 위해 일본산 반도체 장비의 한국 수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협박성 경고까지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반도체 장비산업이 제대로 크지 못한 이유를 꼽으라면, 반도체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장비 기술력은 떨어지는 점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장비업계는 기술력 부족보다는 기회 부족이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술개발을 거듭해 이제는 선진 장비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기술은 갖고 있지만, 시장이 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국산 장비보다는 외산을 선호하고, 무리하게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있다고 부연설명한다.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은 그 지역에 세계적 반도체기업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무려 10년간 세계 정상을 유지해온 ‘메모리 강국 한국’에 세계 수준의 장비업체가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반도체기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삼성에 장비를 공급하는 기업이 LG에 납품할 수 없음은 반도체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삼성이나 LG에서는 정보가 유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공급업체 처지에서는 시장이 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거 삼성과 현대, LG의 삼각구도에서는 그나마 반도체 장비업체로서는 시장을 확대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LG가 현대에 합병되고, 현대가 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투자여력이 감소해 2000년 이후 한국 반도체산업은 실질적으로는 삼성전자의 외줄공연이었다. LG나 하이닉스에 장비를 공급하던 기업들의 운명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로지 삼성만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서 장비업체의 경쟁력은 살아날 리 만무하다. 최근 하이닉스가 되살아나면서 국내 장비업계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눈앞의 영광만을 생각해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한다면 그 산업의 미래는 없다. 반도체가 한국경제의 핵심으로 계속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초가 되는 장비나 소재산업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은 반도체기업들에 있다. 국산화에 따른 수혜자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장비 문제로 인해 제품에 문제가 생기거나 수율이 떨어지면 당분간만이라도 세계 제일의 높은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반도체기업들이 해결하도록 하자. 장비나 소재기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국산 반도체의 경쟁력은 앞으로도 영원히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승욱부장@전자신문, sw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