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박환기 오토닉스 사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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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주요 아이템인 방직기용 자동컨트롤 박스는 섬유산업 속성상 경기에 민감해 애를 먹였다. 81년 전시회에 출품된 자동컨트롤박스 장착 방직기 앞에 선 필자.

 제조업으로 전환을 결심하고 첫 아이템으로 선정한 디지털 카운터 개발에 착수한 것이 1982년. 그 당시, 주된 사업 아이템은 전회에 기술한 바 있는 방직기용 자동 컨트롤 박스(일명 셔틀 체인지)였는데, 섬유 산업의 속성상 경기에 매우 민감한 아이템이고, 기복도 심한 편이었다. 당시 나는 디지털 카운터 개발을 목표로 사무실 한켠에 간이 침대를 놓고 새우잠을 자면서 외국산 디지털 카운터를 무수히 사다가 뜯어보고 연구를 거듭하며 독자적으로 회로 기판 설계를 하던 중,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맞게 됐다.

 주된 남품처였던 대구 지역의 섬유 기계 제조업체들이 갑작스런 불경기를 맞아 하나 둘 도산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우리 회사의 주거래 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납품 대금으로 받은 어음 8000여만원이 부도처리가 됐던 것이다. 또한 거래처들의 연이은 부도로 인한 미수금이 늘어나 수억원에 이르게 되었다. 이 액수는 당시 우리 회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금액이었다. 결국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고, 사업 시작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이공계 출신들이 대개 그렇듯, 우직하게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에만 익숙했던 나 역시 이러한 유동성 위기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재앙이었다. 회사에 압류가 들어 온 것은 물론, 집에도 집달리가 들이닥쳤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당시, 세무서의 압류 조치와 함께 성난 채권자들의 빗발치는 빚 독촉을 받으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내린 결론은, “원칙대로 대처하자”였다.

 우선, 나는 자리를 지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도가 나면 일단 오너가 자취를 감추는게 일반적이었으나, 나는 회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몰려오는 채권자들을 맞이했다.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열심히 일해서 갚을 테니 믿고 도와달라고 설득하였다. 이러기를 두어달, 빚 독촉차 찾아왔던 채권자들이 오히려 격려를 해주고 돌아섰으며, 납품 업체들도 신용 하나만으로 부품을 다시 공급해주었다. 특히, 거래처들이 우리 회사를 믿고 다시 발주를 주기 시작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심리적 공황 상태에서 우선 위기를 피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도피라도 했더라면, 오늘의 오토닉스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용기를 얻은 나는, 한편으로는 거래처에서 수주받은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고 한편에서는 중단했던 디지털 카운터 개발에 밤낮없이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개발에 착수한지 2년여만인 1983년에 탄생한 제품이 철판을 구부려 만든 국내 최초의 디지털 카운터 K시리즈이다. 이 어려운 시절, 회사를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고생을 해준 몇 안되는 직원들에게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다. 그때의 교훈은, 역시 ‘신용’이 최대의 자산이라는 점이었다. 지금도 나는 고객과의 약속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직원들에게도 입버릇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1998년 흔히 말하던 IMF 시절, 해외 진출 가속화를 위해 공장 신축을 결정하고 자금을 빌려썼는데, 보증을 섰던 단자사들이 퇴출되면서 은행들의 무차별 자금 회수 압박으로 부도 위기를 겪었다. 이때도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합심 노력과 신용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하였는데, 위기때마다 되새기는 것은 역시 ‘신용’만큼 소중한 자산은 없다는 점이다.

seoul@autonics.com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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