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게임 리그에 새로운 전략·전술이 넘쳐나고 있다. 각종 화려한 마법 유닛 활용에 숨통을 조이는 듯한 섬세하고 탄탄한 운영으로 과거 대규모 물량전과 초반 러시로 탄성을 자아내던 시대는 지나갔다.
스카이프로리그와 양대 개인리그에서 프로게이머들이 선보이는 독특하고 기발한 전략·전술로 인해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어느 때보다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다. 게임 또한 전반적으로 초반 승부보다는 중장기전 양상을 띠면서 경기 시간이 대폭 늘어났지만 접전을 거듭하는 새로운 두뇌플레이는 e스포츠 팬들의 눈을 더욱 즐겁게 만들고 있다.
요즘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전략·전술의 르네상스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맵과 종족에 따라, 또 상대 선수에 따라 다양한 전략·전술이 등자하고 있다. 프로게이머 간 기량 차이가 백지장보다 얇아져 더이상 도발적인 모험은 통하지 않는다. 대신 예전보다 더욱 치밀한 작전 수립과 완벽한 수행만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준다.
# 탄탄한 빗장 수비에 이은 공습 대세
최근 전략에서 주목할 부분은 일단 초반 승부보다 중장기전 양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올 들어 10분 이내의 단기 승부는 크게 줄어든 반면 20분 안팎을 기본으로 30분 이상, 심지어 한시간에 육박하는 장기전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장기전 양상은 무엇보다 초반부터 꼼꼼한 정찰을 벌이고, 이를 바탕으로 준비해 온 전략전술을 빈틈없이 펼쳐나가는 것이 리그의 기본기처럼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초반에 종족 내지 맵에서 비롯된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러쉬에 대한 수비 능력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는데 e스포츠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 한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저그전성 시대를 이끌었던 박성준(POS)과 박태민(SK텔레콤 T1)의 경우 한 때 대 테란전 초반 벙커러시에 대한 수비가 가장 완벽했던 선수로 꼽힌다.
박성준은 최소한의 드론을 동원해 상대의 벙커러쉬를 효율적으로 차단한 후 이어진 역습으로 승리를 거머쥔 중요한 경기가 여러차례 있었다. 박태민 역시 ‘운영의 마술사’라는 닉네임답게 초반 공격에 쉽게 밀리지 않고 중후반으로 경기를 이어나가며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전략·전술로 명성을 얻었다.
# 수비형 프로토스 전성 시대
테란의 부진도 중장기전으로의 경향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초반 마린과 파이어뱃에 메딕을 조합해 저그의 견고한 두번째 해처리 능선을 초토화시키는, 즉 변길섭으로 대표되는 ‘불꽃테란’의 모습을 최근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만큼 초반에 맥없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어 전술이 견고해졌고 또 다양해졌다. 테란이 프로토스를 상대로 초중반 탱크와 벌처 조합을 앞세워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전술도 많이 약해진 느낌이다.
중장기전 양상에는 수비형 프로토스의 강세도 한몫했다.
프로리그에서 수비형 프로토스 파해법이 화제가 될 정도로 강민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진 수비형 프로토스는 명칭 그대로 초반부터 캐논을 깔며 안정적으로 멀티를 늘려 중후반을 준비하는 수비 위주의 전략이다. 이어 두개 이상의 안정적인 미네랄·가스 멀티를 돌리고 인구수가 100 이상이 됐을 때부터 고급 유닛을 활용해 부분적인 전술로 서서히 상대를 압박해나간다.
강민의 경우 이러한 수비형 프로토스 전략을 앞세워 전반기 프로리그 개인전 및 에이스 결정전에서 승승장구했다. 이와 동시에 종족을 불문하고 초반 러시 행태도 대체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프로토스의 경우 대 테란과 저그전에서 아비터와 캐리어의 등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수비형 프로토스 또는 중장기전 승부 경향에 따른 풍부한 자원확보로 인한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에따라 아비터를 활용한 ‘리콜’ 등 최상위 마법도 심심찮게 활용되고 있다.
지난 여름 전반기 프로리그 최대 명승부로 기록되는 강민과 박태민의 대결은 한시간을 넘겼고, 최근 송병구와 박경락의 대결은 업치락 뒤치락하는 접전 끝에 50분을 넘겼다. 저그 역시 과거 단기 승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울트라리스크’과 ‘퀸’, ‘디바우러’ 그리고 ‘터널’ 활용까지 자주 등장하고 있다.
# 안정적 멀티에 이은 다양한 후반 전술
초반 정찰 및 빌드 구축이 자신의 약점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안정적인 테크트리로 정형화됨에 따라 경기는 대부분 중장기전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마치 바둑에서 초반 정석이 굳어질대로 굳어져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10수 가량의 포석전 이후부터 본격적인 승부수를 던지는 추세와 비슷하다.
한두개의 필살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초반 러시와 달리 중장기전은 응용가능한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는 것이 가능하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자원확보와 테크트리는 진전되고 이에 따라 활용유닛과 공격 포인트에 대한 선택의 여지도 많고 넓기 때문이다.
최근의 중장기전에서 자주 보이는, 즉 자신의 본진과 멀티를 지키는 동시에 상대를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소규모 전술이 끊임없는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허술한 멀티를 견제해 상대의 자원에 압박을 가하고, 계속해서 국지전을 벌여 자원을 소모시켜 서서히 힘에 우위를 점해간다. 어느새 물량차이가 서서히 나타나고 자원 압박을 못이긴 상대는 무리수를 두거나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물러서게 된다.
지난 ‘So1스타리그’에서 챔피언에 오른 오영종이 결승 1, 2차전에서 임요환을 상대로 사용한 것이 바로 이러한 수비형 전술을 바탕으로 후방 견제 전술을 적절히 섞어놓은 전략이다. 오영종은 안정적인 멀티와 추가멀티를 확보한 후부터 세부 전술로 들어가 지속적으로 임요환의 후방과 멀티를 견제하며 물량은 물론 전반적으로 경기 자체를 리드해 갔다.
온게임넷 김창선 해설은 “한두번의 꼼수가 통하던 때는 지났다. 또 신예와 노장을 불문하고 프로게이머 간 실력차이가 엷어져 누가 얼마만큼 치밀하게 전략전술을 준비해왔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되고 있다. 따라서 초반보다는 중장기전 승부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기발한 발상이나 저돌적인 행동 보다는 치밀하고 정확한 전략전술이 더욱 돋보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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