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장르는, 전자 정보 통신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화 사회와 매우 잘 어울린다. 왜냐구? 전혀 만날 것 같지 않은 인터넷 광통신의 정보화 사회와, 시퍼런 칼과 내공의 기를 사용하는 무협이 만나는 부분은, 바로 속도감이다. 이것이 한동안 잊혀진 무협 장르를 최근 다시 부활시키는 심리적 원동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팔이’ 검객 시리즈나 ‘용문의 결투’ 같은 홍콩 무협 장르의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도 60·70년대에는 많은 무협 영화가 만들어졌었다. 잊혀진 무협 장르를 최근 다시 복원시킨 영화는 ‘비천무’를 꼽아야 할 것이다. 김희선의 어색한 대사가 술자리의 단골 안주로 등장했던 5년 전의 ‘비천무’는 김혜린 원작 만화를 영화화 한 것이었다.
그 ‘비천무’를 만들며 혹독하게 데뷔 신고식을 치룬 김영준 감독이 5년 뒤인 지금, 또 다시 무협 장르로 중원 정복을 꿈꾸고 있다. 제목부터 전작과 무관하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 ‘무영검’은 옛 발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촬영된 ‘비천무’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을 노출했다면, 적어도 ‘무영검’은 그때 축적된 노하우를 물려받아 큰 차질 없이 진행된 중국 현지 촬영과 와이어 액션으로 대표되는 무협 장르의 특색이 잘살아 있다. 적어도 기술적인 면에서는 전작을 훨씬 능가하는 상업적 재미를 안겨준다.
926년, 거란에 침략당해 뿔뿔이 흩어진 발해 왕조를 다시 세우고자, 발해의 유민들은 백성의 구심점 역할을 해줄 발해 왕손을 찾는다. 지금은 중국 땅에 피신해서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장물아비로 근근이 살아가는 대정현(이서진 분), 그리고 그를 발해의 왕으로 모시기 위해 자객들로부터 지키며 안전하게 발해의 군사들이 있는 곳까지 호위해 가는 여자 무사 연소하(윤소이 분)가 한 커플이라면, 원래 발해의 장군이었지만 거란에 붙어 자객단인 척살단을 거느리고 있는 척살단주 군화평(신현준 분)과 그를 사랑하는 심복 매영옥(이기용 분)이 또 한 커플이다.
거칠게 말하면, ‘무영검’은 대정현·윤소하의 선의 커플과,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군화평·매영옥의 악의 커플의 대결로 이루어져 있다. 무협장르는 권선징악이 필연적이다. 당연히 내러티브는 선의 커플인 발해왕족 대정현과 그를 목숨처럼 지키는 윤소하를 중심으로 풀려나간다. 그런데 ‘무영검’의 비극은 이 커플들이 관객들에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우선 대정현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다. 시정잡배들과 어울린 장물아비에서 민중을 사랑하는 위엄 있는 군주로 거듭나는 과정이 관객들의 감정선과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처음에는 연소하의 호위를 받아야 겨우 목숨을 지키는 백면서생처럼 등장하다가 나중에는 절세의 고수 군화평과 대결해 그를 꺾는 설정이 어색하기만 하다.
정통 무협이라면 이 과정에서 적어도 무림비급을 얻어 내공을 연마하거나, 천하고수의 사부를 만나 한 수 배웠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생략되어 있어서 대정현이 결말에 초절정 고수로 변신하는 것은 어색하기만 하다. 김희선의 악몽이 재현될 정도는 아니지만, 이서진의 연기 또한 어색하기만 하다. 오히려 악의 축인 군화평과 매영옥이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다.
‘무영검’은 이안의 ‘와호장룡’이나 장예모의 ‘연인’처럼 동양적 서사액션 장르로서 무협에 대한 접근이 있었어야만 했다. 그 첫 번째 관문은 와이어 액션이 아니라, 정신이다. 좋은 영화는 장르가 무엇이든 그것을 지탱해주는 사상적 바탕이 튼튼하다. ‘무영검’은 시각적 액션에만 치우쳐서 본질적 정신을 망각한 겉치레 영화가 되어버렸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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