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새로운 성장엔진](10)해외 개발현장을 가다<독일>②슈투트가르트IPA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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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진이 유럽의 로봇 개발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DLR연구소에 이어 두 번째로 찾은 곳은 로봇과 산업설비자동화 분야 유럽 최고 응용 기술 보유기관인 슈투트가르트 IPA(Institut Produktionstechnik und Automatisierung)의 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프라운호퍼(Fraunhofer) 연구회 소속으로 원천·기초기술 연구에 주력하는 헬름홀츠연구회 산하 DLR연구소와 달리 당장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최신 응용 기술을 연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때문에 기업들이 엔지니어를 파견해 공동연구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연구소 직원들도 조용히 앉아 ‘학문’을 연구하기보다 ‘제품’을 개발하는 듯한 바쁜 분위기 속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IPA연구소의 서비스로봇 연구실에서는 20여명의 연구원이 거대한 생산설비에서부터 어른 허리 높이에 오는 작은 로봇, 미로찾기 로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바일 로봇의 움직임을 쉴새없이 테스트하고 있었다.

 연구실 입구에는 경비로봇이 서 있었다. 키가 130cm 정도에 불과한 이 자그마한 로봇은 팔다리없이 몸통과 머리만으로 만들어졌다. 머리에는 카메라가, 몸통에는 소형 컴퓨터 그리고 중앙 서버와 교신할 수 있는 무선LAN(WiFi) 칩이 내장돼 있다. 로봇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머리에 장착된 카메라가 주변 상황을 촬영하고 이 영상 데이터를 몸통 내 무선 LAN을 통해 중앙 서버로 전송한다. 말하자면 움직이는 CCTV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로봇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이족로봇과 달리 몸통 아래쪽에 바퀴가 달려 평지를 자유롭게 보행한다. 연구실 책임자인 마틴 해겔 박사에게 “로봇에 바퀴 대신 다리를 달 계획은 없느냐”고 질문하자 “그러면 제조원가가 많이 올라가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사람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없을 바에야 바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지만 이 곳에서는 로봇을 연구하면서 마치 기업처럼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실제로 이 경비로봇은 개발 직후 네오보틱스라는 독일기업에 기술이 이전됐으며 내년부터 슈퍼마켓용 제품으로 양산될 예정이라고 한다.

 연구를 하면서 끊임없이 시장을 생각하는 IPA의 ‘기업마인드’는 이 뿐만이 아니다.

 IPA에서는 모든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 관련 업체들에 설문을 보내 시장수요조사를 실시한다. 설문 결과에 따라 상품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판단하고 연구결과에 다시 반영하기 위해서다.

 연구실 가장자리 한 켠에는 작은 미로가 설치돼 있었다. 이 곳에서는 길찾기 로봇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미로 위 천장에는 카메라가 설치돼 로봇이 좌우전후로 이동할 때마다 화살표 방향의 오차를 측정해 데이처 값을 만들어내고 이 데이터를 근거로 움직임의 오차를 최소화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IPA가 가장 자랑하는 것은 박물관 도우미 로봇 ‘CARE-O-BOT’이었다. 이 로봇은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로봇이다. IPA는 이제까지 모두 3종류의 도우미로봇 모델을 개발했다. 1999년 하노버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인 초기 모델은 초속 1m로 움직이며 사람들의 질문을 알아듣는 음성인식 기능과 박물관의 동선을 알려주는 음성 기능 정도만 갖추고 있다.

 두번째 모델은 집게 모양의 팔 하나를 달아 관람객들에게 음료수 주문을 받는 기능이 추가됐다. 이 모델은 독일 오펠뮤지엄에 2대가 공급됐으며 이달 중순경 스페인에도 1대를 수출할 예정이다.

 연구진이 최근 극비리에 개발을 끝낸 3세대 모델은 아직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3세대 모델은 이전 모델처럼 박물관용으로 쓰기보다는 일반 가정이나 양로원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내년 5월 한 독일 기업을 통해 시장에 정식으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차세대 모델은 사람처럼 두 팔이 달려 있어 노인을 부축하거나 화초에 물주기, 간단한 가사일 돕기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됐다. 시중에 나온 미국 업체의 청소로봇처럼 돌아다니다가 동력이 떨어지면 스스로 충전기를 찾아가 손을 충전기에 집어 넣어 자동으로 충전하는 기능도 있다. 머리에는 눈 대신 좌·우 2대의 웹 캠과 스캐너가 달려 있다. 왼쪽 웹 캠은 환경을 3차원 입체 영상으로 인식하고 오른쪽은 사람을 인식한다. 마치 사람의 좌뇌와 우뇌처럼 역할이 구분돼 있는 것이다.

 취재진은 IPA가 몇 년에 걸쳐 서비스 로봇을 다양한 모델로 ‘진화’시키면서도 외형은 그다지 크게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해겔 박사는 “모바일로봇 기술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됐다고 본다. 이제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주로 그 안에 들어가는 SW 즉 애플리케이션에 치중돼 있다”고 답했다. 즉 학문적으로 깊이있는 기술이 아니라 ‘쓸모있는 용도’의 기술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것이 이들의 관심사인 것이다.

 학문에서조차도 실용성을 추구하는 IPA연구소의 문화는 한 분야의 숙련공을 ‘쟁이’가 아니라 ‘대가(Meister)’로서 존경하는 독일 문화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학문과 생활의 경계가 없는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가 창조되고 있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인터뷰/롤프 디터 슈라프트(Rolf Dieter Schraft) IPA 소장

 “10년 후에는 서비스로봇이 각 가정에서 ‘접시 세척기’ 같은 필수품이 될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100만대 이상의 로봇이 팔렸고 독일에서만도 20만대가 소비자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이 통계는 지금까지 대형 산업용로봇에 집중돼 있었지만 앞으로는 서비스로봇과 어시스턴트로봇(산업용 생산보조로봇) 분야가 유망할 것으로 슈라프트 소장(62)은 내다봤다.

 그는 특히 가정용 서비스로봇 시장이 이미 충분히 성숙해 있다고 판단했다.

 슈라프트 소장은 “산업용 로봇 개발은 남보다 1초 빨리 1마르크 싸게 성능을 올리는 게 성공 비결이지만 서비스 로봇은 경제원칙보다 소비자의 취향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최대 로봇응용연구소 소장으로서 독일정부의 로봇관련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에 한국의 전폭적인 로봇산업 육성정책을 본받으라고 강조한다”며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부러움을 표시했다.

 슈라프트 소장은 한국의 로봇산업에 대해 “(한국은) 산업용 로봇 기술이 충분히 성숙해 있고 연구프로그램 진행상황을 보면 서비스 로봇에 대해 정확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며 “삼성·LG·현대 등 좋은 물건을 만드는 기업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준비가 됐을 때 세계시장에서 승산을 걸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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