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e러닝과 게임

 지금으로부터 4년여 전인 2001년 가을쯤의 일이다. 콘텐츠 업계는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이하 디콘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디콘법은 법률 이름 그대로 온라인을 통한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을 촉진하고 관련 산업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골자였다.

 현 시점에서 보면 특별히 문제가 될 소지가 없어 보이지만 당시 상황은 달랐다. 불과 4년여 전이지만 당시에는 디지털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게임을 비롯해 날로 커지는 콘텐츠 산업을 법률과 제도의 틀 안에서 어떻게 관리하고 누가 육성하느냐를 놓고 정부 부처 간 이견이 많았다.

 특히 게임 산업이 주 타깃이었다. 문화관광부·정보통신부·산업자원부가 게임 산업의 주무 부처로 자처했다. 문화부는 게임이 문화산업의 연장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산자부는 게임을 산업적으로 육성하려면 산업적인 틀과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놨다. 정통부는 향후 모든 게임이 인터넷망을 통해 유통될 것이라며 ‘새 술은 새 부대’ 이론을 설파했다. 결국 논쟁은 3개 부처의 파워 게임으로 번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부처의 힘, 돈과 조직 규모가 대세를 좌우하는 밥그릇 싸움으로 번졌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디지털 콘텐츠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집어 넣은 디콘법은 논쟁을 끝낼 만한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었다. 물론 디콘법이 디지털 콘텐츠를 ‘온라인’이라는 틀 안에 국한하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정통부가 게임을 비롯한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막강한 파워를 갖는 근거로 활용됐다.

 4년여가 지난 2005년 가을 콘텐츠 산업을 총괄하는 ‘디지털 문화부’ 데스크로 자리를 옮긴 다음 가만히 바라다보니 e러닝이 과거의 게임과 많이 닮았다. 우선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다크 호스로 떠오르는 것이 똑같다. 정부 부처와 연구기관이 온통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것도 비슷하다. 이미 지난해 국내 e러닝 시장이 1조3000억원 규모를 넘었으며 오는 2010년에는 6조8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정부 부처가 e러닝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산자부와 교육부는 이미 e러닝을 핵심 육성 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다. 교육부는 e러닝 정책을 전담할 ‘e러닝국’의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e러닝진흥원의 설립 추진도 향후 수순으로 보인다. 최근엔 그동안 뒷전에 있던 문화부가 e러닝 육성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직까지 별 다른 움직임이 없지만 정통부까지 나설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4년 전 게임을 둘러싼 정부 부처의 주도권 싸움이 재연될 조건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그 양상은 사뭇 달라 다행이다. 일부 분야에서 잡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부처들이 보조를 맞추는 성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산자부, 교육부, 문화부 등 9개 정부 부처는 e러닝을 범국가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e러닝산업 발전기본계획’을 공동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 앞으로 이 발전 계획의 각론에서 각 부처의 이해와 주장이 달라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또 실제 실행 단계에서 부처 간 알력과 마찰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육성이라는 판 자체를 깨버리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그래야만 게임 산업 초창기의 혼란과 낭비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러닝산업발전위원회가 이달에 내놓겠다는 발전 계획에 큰 기대를 건다. 혹시 시일이 촉박하다면 해를 넘겨도 좋으니 최소한 향후 4년 이상을 내다보는, 제대로 된 큰 그림을 그려주길 주문한다.

 이창희 디지털문화부장@전자신문,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