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새로운 성장엔진](8)해외 개발현장을 가다②美 MIT CS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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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은 굼뜨지만 암·수 두 쌍의 로봇들이 만나 서로 엉켰다. 역시 굼뜬 동작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암·수 두 쌍의 로봇들은 함께 적절한 형태를 만들어 가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사진>

지난달 14일 오후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 : Computer Science and Artificial Intelligence Laboratory)의 다니엘라 루스(Daniela Rus) 교수 연구실, 그곳에 스스로 형태를 바꾸는 로봇들이 있었다.

수컷 로봇과 암컷 로봇은 우선 자신과 상대방의 생김새(형태)를 인지한 뒤 적절한 결합형태를 결정했다. 구조적으로 수컷끼리, 암컷끼리 결합할 수 없는 형태임을 인지하는 똑똑함도 보여줬다. 로봇 한 쌍은 다시 자신들과 비슷한 형태로 결합한 다른 한 쌍과 엉켰다. 그들은 목적지를 향해 마치 발을 내밀듯 암컷 로봇 하나가 결합체 바깥쪽으로 튀어나와 회전축을 형성한 뒤 새로운 형태로 결합해가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어른 주먹 크기 정도인 쇳덩어리 두 개를 잇대어 놓은 것 같은 그 암·수 로봇들의 이름은 ‘분자 자기변형 로봇(The Molecule Self-Reconfiguring Robot)’이다. 아직 로봇들의 동작이 굼뜨긴 하지만 인공지능을 기계(로봇)에 이식하는 선발주자임을 뽐내기에는 충분하다.

“궁극적인 연구목표는 스스로 조직(Self-Organization)하는 로봇입니다.이를 위해 로봇공학은 물론이고 모바일 컴퓨팅, 센서 네트워크 등 정보를 다루는 모든 메커니즘에 엔지니어링 포인트를 맞추고 있습니다.”

루스 교수 연구팀은 유리창에 붙어 돌아다니며 햇빛에 따라 실내조명을 조절해주는 로봇, 깊은 바닷속에서 센서 네트워크를 형성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로봇 등 ‘스스로 움직이고 결정하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기울인다. 아직 동작이 굼뜨고, 이것저것을 인지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루스 연구팀의 로봇들로부터 험난한 지형을 알아서 돌파해 가는 새로운 이동체, 눈에 띄지 않은 채 정보를 모으는 완벽한 스파이를 기대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 하지만 메커니즘이 명확하기에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놀라운 능력을 가진 로봇’들과 맞닥뜨리게 되리라는 게 연구팀의 확신이다.

그 놀라운 로봇들은 루스와 그의 동료, 미국과 세계 로봇공학자들의 정보 공유와 협력을 통해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루스 교수 연구실로부터 몇 걸음을 옮겨 ‘도모(Domo)’를 만났다. 애론 애드싱어(Aaron Edsinger) 박사의 애인(?)인 도모는 29 자유도(DOF·Degrees Of Freedom·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역학적 갯수)와 58개 자극감지센서, 24개 촉각센서를 갖추고 인간의 친구가 되려 한다. 도모는 앞으로 더욱 많은 센서와 더욱 부드럽게 힘을 조절할 수 있는 액추에이터(actuator)를 갖추고 사람과 악수하고, 대화하며, 물건을 건네게 될 것이다.

애드싱어 박사는 “로봇에게 부드럽게 조절하는 법(manipulator)을 제대로 가르친다면 가정생활은 물론이고 농사짓는 일, 미세한 조립작업, 우주 개척 등 많은 분야에서 유용해질 것”이라며 “도요타와 나사가 도모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루스, 애드싱어는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공간(CSAIL)에 있다. 루스의 네트워크 로봇과 애드싱어의 도모를 결합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그림(기대)’이 그려진다. 우리 로봇공학계도 루스 교수가 말하는 “더 멀리 보고 더 많은 것을 수집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주목할 때다.

◆미래로 뛰는 선배와 후배, 이석우와 윤여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는 한국인이 많다. CSAIL에도 주목할 한국인들이 거쳐갔고, 지금도 있다. 미래를 향해 내달리는 MIT 기계공학과 출신 한국인 선배와 후배를 만났다. 그들에게서 한국 컴퓨터·로봇공학의 미래를 찾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일까.

◇이석우, 밀레니얼넷 최고기술임원(CTO)

“헬리콥터로 특정 지역에 작은 센서 로봇들을 뿌립니다. 센서 로봇들은 뿌려진 곳에서 그물코(mesh) 네트워크를 갖추고 누가 언제 얼마나 지나갔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등 거의 모든 정보를 위성으로 쏘아 올립니다.”

이석우 박사(35)는 ‘무선 그물코 네트워크’에 주목한다. 헬리콥터로 작은 센서 로봇들을 흩뿌린 뒤 척후병으로 삼는 개념은 미 국방성이 10년 전부터 관심을 기울인 것. 지난 2001년 아프카니스탄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미 국방성은 아프카니스탄에 그물코 네트워크 로봇과 동굴탐사로봇 1대를 투입했다. 이후 수색 로봇 연구개발 무게중심이 ‘1대가 수행하는 구조’에서 ‘군집형’으로 바뀌었다는 게 이 박사의 전언이다.

“그물코 네트워크는 낡은 건물이 많은 미국에서 유용합니다. 특히 네트워크 형태를 미리 정할 필요가 없고, 형태가 변해도 네트워크가 끊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 국방성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올해 1억 달러, 2008년께 10억 달러 시장이 창출될 전망입니다.”

이 박사는 유선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힘든 대형 병원, 공장 등에 그물코 네트워크를 구축해준다. 특히 낮은 전류(220㎃)와 상용 주파수(0.01㎐)로 한 번 포설해 10년간 사용할 수 있는 그물코 네트워크를 선보여 미국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밀레니얼넷(http://www.millennialnet.com)을 창업했고, 2100만 달러대 자금(투자유치)과 기술을 발판으로 삼아 나스닥에 입성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MIT의 ‘테크니컬 리뷰’지가 선정한 ‘35세 이하 이노베이터 100명’으로 뽑혔다.

◇윤여름, 로봇 박사를 향해

“제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우주선 바깥을 수리하는 날이 올겁니다.”

윤여름 씨(24·MIT 기계공학과 석사과정)는 CSAIL 다니엘라 루스 교수팀에서 ‘3차원 모듈러(Moduler) 로봇’을 연구한다. 루스 교수가 유리창, 건물벽 등에 바싹 달라붙어 2차원으로 이동하는 로봇을 개발 중인데, 그 이동공간을 3차원으로 한 단계 발전시킬 계획이다.

루스 교수가 추구하는 핵심 연구목표의 하나인 ‘스스로 형태를 만드는 메커니즘’과 윤 씨의 3차원 모듈러 로봇이 실용화하면 우주, 바닷속 등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루스와 윤 씨의 로봇이 ‘로봇태권브이’나 ‘알투디투’처럼 멋진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메커니즘은 우주와 심해에서 당장 필요한 기술이다. 실제로 미 항공우주국(NASA)이 루스 교수팀에 모듈러 로봇 개발을 제안한 상태다.

“요즈음 3차원 모듈러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습니다. 컴퓨터로 예측(가상현실)해본 것을 실제화하는 첫 단추인 셈입니다. 눈코 뜰 새 없습니다.”

MIT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에 펜웨이파크(미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팀의 홈구장)가 있다. 그 곳에 가끔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럴 시간이 없다”며 로봇 삼매경에 빠졌노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서울과학고를 나와 1년여째 CSAIL에서 땀 흘리는 윤여름 씨, 그를 비롯한 MIT의 한국 청년들이 10년 뒤 대한민국 로봇공학을 활짝 꽃피우길 기대해본다.

보스턴(미국)=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