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국어정책은 그 민족을 결속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래서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국어 정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해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국어 정책에 대한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강력하거나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국어기본법이다. 국어기본법은 ‘공문서의 한글 전용’ 규정뿐 아니라 우리말을 보전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의 의무를 분명히 규정했으며 5년마다 국어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규정이 강제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으로 돼 있고 인력·예산지원 등에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아 실효에 대해 많은 의문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어기본법상 정책을 총괄, 시행해야 할 국립국어원의 내년 예산은 올해와 비슷한 130여억원으로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설립하고 있는 영어마을과 영어학교의 예산 수백억원에 비하면 시쳇말로 ‘새발의 피’ 수준이다.
정부기관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채 정책용어를 선정함으로써 정부가 외국어 범람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교육부의 저소득층 영재대상 엘리트 교육 정책인 ‘리치아웃’, 농림부 농작물 재해예방 및 관리정책인 ‘세이프팜존’, 문화부의 저소득층 청소년·장애인 문화향유 기회확대 정책인 ‘문화바우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밖에도 특별한 생각없이 ‘동북아허브’·‘테스크포스’·‘로드맵’·‘향후’·‘경어’·‘연면적’ 등 국적이 불분명한 용어를 공문서 등에 사용해 국민을 신사대주의에 매어 놓거나 문맹인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을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언어는 공동체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공유·전달에 필요한 수단으로 때문에 문화의 핵심은 언어라고 말한다. 최근 종이 국어사전 출판사들이 인터넷의 영향으로 사전 매출이 급감하자 절판 하거나 개정판 발행을 전면 유보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국어사전의 제자리 걸음은 어휘사용의 폭을 제한하고 지식축적을 방해해 문화수준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므로 공공재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국어사전 발행에 대해 국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물론 국제화 시대에 우리나라는 역사를 바로 알고 외국에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문이나 영어 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이 우선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게 한글 애호론자들의 지적이다.
권상희기자@전자신문, sh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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