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로봇을 유난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고 뛰기도 하는 휴머노이드 ‘아시모’나 강아지 로봇 ‘아이보’ 등을 통해 일본은 사회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또 로봇의 기능이 단순한 청소용에서 헬스케어로 넘어가는 추세에 따라 조만간 도래할 ‘1가구 1로봇’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60㎞ 가량 떨어져 있는 이바라키현의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 최근 쓰쿠바 익스프레스(TX)가 개통돼 1시간이면 넉넉히 원하는 연구소를 찾을 수 있을 만큼 도쿄와 인접해 있는 데다 130여개의 전문연구단위(유닛)가 규칙적으로 정렬돼 있는 모습에서 대덕연구단지가 연상된다.
AIST는 전문연구단위를 지난 2001년 23개의 연구부문·연구계(100∼250명)와 32개의 연구센터(10∼60명), 82개의 연구실(2명 이상)로 개편, 운영중이다.
AIST 내 로봇 연구기관인 지능형시스템연구부문(부문장 히라이 시게오키)의 연구현장을 9월 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형 로봇연구단의 이재연 박사와 찾았다.
◇AIST는 로봇연구의 집합체=정규직 연구원 66명을 포함해 120여명의 연구원이 매달리고 있는 AIST의 로봇연구 분야는 산업용 정밀로봇에서부터 지능형, 휴머노이드까지 다양하다.
연간 3억1987만엔(약 30억원)을 쓰고 있는 이 지능형시스템연구부문의 예산 구조는 일본 중소기업청의 지원액 4146만6000엔을 포함해 대부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민간 위탁은 20여건에 2978만엔(2억9000만원)이다.
지능형시스템연구부문에서는 IT시스템의 지능화 기초연구나 정보시스템 기계, 로봇 메카트로닉스 시스템, 센서 네트워크 등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와 공동으로 자율행동신경제어연구실을 꾸리고 있는 요코이 가주히토 박사는 “인간이 이용하는 정보의 80% 이상이 시각정보일 정도로 눈은 중요한 인식도구”라며 “현재 입체지각이 가능한 3차원 시각 시스템을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KAIST의 휴머노이드 보고 놀라=AIST는 휴머노이드(이족보행로봇) 개발에 특히 온 정성을 들이고 있다.
연구진은 지난 98년부터 ‘인간 협조·공존 로봇 시스템의 연구개발’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HRP(휴머노이드 로봇 플랫폼)프로젝트에 따라 진행해온 휴머노이드 제작에 총 10억엔을 쏟아 부었다. 로봇은 지금까지 10대가 만들어졌다.
“한국의 휴머노이드 기술 수준에 대해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단기간에 수천만엔의 예산으로 이족보행 로봇을 만들었다는 데 놀랐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보틱스그룹을 이끌고 있는 히로카와 히로히사 박사에게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휴보’ 개발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하자 “무엇보다 투입된 예산을 알고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는 말부터 꺼냈다.
히로카와 박사가 현재 만들고 있는 이 휴머노이드 버전 2(HRP 2 01)는 밀어 넘어뜨리면 다리를 오므리고 넘어져 충격을 완화하거나 물건 잡고 계단 오르기, 25.9㎏짜리 물건 밀기, 800×500㎜짜리 평판 조작, 시간당 0.58㎞의 속도로 빨리 걷기 등이 가능하다.
히로카와 박사는 “간호나 건축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5년 후 정상인이 갈 수 없는 곳에서 작업을 대신하는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도 기술 상용화 골치=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기술 상용화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AIST의 연구발전 단계를 △기초연구 △제품화 연구 △시장화로 설정한 것에서 우리나라처럼 조급성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정책으로 꽤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실제 이 연구부문은 휴머노이드의 경우 대당 4000만엔에 10대를 팔았다. 물론 국내 공급이다. 주로 상업용이라기보다는 아직은 연구용으로 공급하고 있다.
여기서 만든 대표적인 로봇은 치매환자 치료용으로 만들어진 물개로봇 ‘파로’다. 파로는 현재 업그레이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상용화까지 성공한 ‘파로’의 연구결과에 대한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히라이 시게오키 부문장은 “휴머노이드의 경우 당장 엔터테인먼트로 활용이 가능해서인지 호텔서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 고민도 했다”며 “전세계적으로 100대 정도 팔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엔터테인먼트는 10년, 사람과 동일한 작업을 하는 로봇이 나오기까지는 15∼20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AIST 창업기업 `지능시스템`
‘물개 로봇으로 노인성 치매를 치료하세요.’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 지능형시스템연구부문 출신의 시바타 다카노리 박사가 지난해 9월 창업한 ‘지능시스템’이 치매 환자들의 심리치료용 물개로봇 ‘파로’로 주목받고 있다.
‘파로’는 시바타 박사가 독자 설계한 물개 로봇으로 창업 초부터 노인과 어린이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까지 35만엔(350만원)이나 하는 이 로봇은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400여 대가 팔려나갔다. 주요 수요처는 개인보다 노인 병원이 환자 치료를 위해 구입하고 있다.
이 로봇은 시각, 소리, 온도, 언어 등을 인식하고 사람의 말과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개발됐다. 쓰다듬거나 간지럽히면 눈을 살포시 감고 이름을 부르면 짖어댄다. 또 껴안아 달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하며 코의 잔털을 건드릴 경우 싫다고 짖기도 한다.
이 ‘파로’는 한 번 충전으로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작동한다. 고성능 CPU가 2개나 장착되어 있으며 촉각, 시각, 청각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수십 개의 고성능 모터와 센서가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인공지능에 의해 자율적인 작동과 반응 등 상호작용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히 애완동물의 단점인 청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드러운 항균 인공모피를 썼으며 ‘파로’ 전용 세제를 만드는 등 위생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대부분의 병원이 애완동물을 통한 치료효과가 있는 것을 인정하지만 알레르기나 바이러스 감염, 돌발적인 공격 등으로 인해 애완동물의 활용을 기피해 왔다.
‘지능시스템’ 관계자는 “처음에는 걷는 기능을 넣었으나 환자들의 심리 안정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뺐다”며 “세계 최초의 심리치료 효과가 있는 로봇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고 자랑했다.
◆인터뷰-히라이 시게오키 AIST 부문장
“연구개발(R&D)에 관한 논문은 많이 나오지만 이를 상용화와 연결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의 히라이 시게오키 지능형시스템연구부문장(55)은 “정부가 기술 상용화 성과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생활이나 산업과 접목하는 상품화 작업이 상당히 약한 편”이라며 “활용성을 고려한 기술 개발이라는 숙제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다.
히라이 부문장은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등의 적극적인 창업 지원보다는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벤처 캐피털을 찾아 주는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그동안 AIST에서는 연구의 ‘재미’에 따라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 상품화를 고려한 접근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AIST 지능형시스템연구부문에서도 최근 2명의 연구원이 창업했다”는 히라이 부문장은 “의료용 로봇 ‘파로’와 3D비전이 돈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AIST는 최근 기업과의 공동연구에도 꽤 신경을 쓰고 있다. 공동연구 기업의 사정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10여개의 기업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R&D 결과가 어떻게 활용될지를 연구자들이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논문이 나오면 됐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기술적인 과제에 대해 히라이 부문장은 “소재나 기계전자 정보는 많지만 로봇 관점에서는 시스템을 통합하고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리얼타임 미들웨어나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 컴포넌트를 레고식의 아키텍처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누차 강조했다.
“이런 저런 결과물이 모듈별로 되어 있을 경우 통합 과정을 거쳐 서로 표준화된 인터페이스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국 로봇 연구에 대해 히라이 부문장은 “예산 면에서 보면 정부 투자가 일본의 10배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유비쿼터스 환경과 연계되는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며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바라키현(일본)=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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