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리더가 필요하다

 SI시장이 붉게 물들고 있다. 말 그대로 레드오션이다. 외견상으로는 저가수주 자제, 이익극대화, 상생 등이 SI시장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조금만 안을 들여다보면 진흙탕 싸움이다. 올해 들어 대형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발주돼 모처럼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발주되는 프로젝트가 많은 만큼 뒷말 또한 무성하다. 과거 3∼4년 전 ‘모 아니면 도’식의 영업을 벌일 때 모습 그대로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프로젝트에서 떨어진 기업들은 해당 발주처뿐 아니라 감사원이나 청와대 등 이른바 끗발 있는 기관에 이의신청을 제기한다. 일단 고소부터 해보자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SI산업이 성숙산업이 된만큼 이제 어느 정도 영업의 틀을 잡아가는 것 아니냐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시장은 다시 핏빛 전장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최소한의 예의마저 사라졌다는 한탄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온다. 후유증이 두려워 발주하기가 겁난다는 한 기관장의 목소리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SI업체 간 경쟁뿐이 아니다. SI산업의 주요 구성 축인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도 비걱거리고 있다. 상생이니 공생이니 이야기하고 있지만 협력업체들의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SI기업들이 국내 솔루션기업들을 죽이고 있다며 반발이 만만치 않다.

 왜 갑자기 SI시장의 고질병들이 다시 슬금슬금 기어나오는지 SI시장을 지켜보는 관계자들은 안타까워한다. 대형 SI업체들 간 물불 안 가리는 수주경쟁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삼성SDS·LG CNS·SK C&C 기존 3강의 자존심을 건 싸움에, 막강한 자금력과 함께 통신인프라라는 무기를 확보하고 있는 KT가 SI시장에 뛰어들면서 뺏고 뺏기기 경쟁이 무차별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중형기업들 또한 본격적으로 그룹 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대형 SI업체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혈전을 벌이고 있다. 수주제일주의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기대하기 어렵다. 프로젝트에 떨어진 데 따른 책임을 스스로 지기보다는 이의신청이나 고소 등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하려 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또 대형 SI업체들의 수익 위주 경영은 결과적으로 협력업체들의 출혈을 가져온다. 저가에 수주한 상황에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긴 시간 이어온 협력업체와의 관계는 숫자 앞에서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협력업체 제품가격을 치거나, 아예 자체 솔루션을 갖고 영업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를 인식하고 치유할 수 있는 SI업계 간 시스템이 전혀 가동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산업을 이끌어야 할 대형 SI기업의 CEO 대부분이 각 기업의 경영에 옭매여 산업 전체를 고려한 의사결정을 내리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과거 대형 SI업체 CEO들이 머리를 맞대고 산업 활성화나 업계 상생을 위해 전체를 아우르려는 모습을 최근 들어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산업에 대한 고민을 CEO 레벨에서 공유하고 극복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없다면, 최근 SI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치유하고 시장상황을 개선하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문제가 상당수 CEO가 SI분야 출신이 아니라는 데 원인이 있다고 한다. 이 분야에서 같이 부대끼고 성장해 왔다면 최소한 상대방을 배려하는 전략이 나올 수 있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형 SI기업 CEO들이 이제는 리더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지난 2∼3년간 해당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그 한계를 넘어 산업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다. SI산업에 리더가 필요하다.

  양승욱부장@전자신문, sw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