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에 등장했던 외계 생명체를 모델로 탄생한 ‘스타크래프트’ 게임 속 저그는 싸움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영화 속에서도 나왔듯 빠르고 강하며 치명적인 무기로 상대를 일말의 주저함 없이 제거한다.
그리고 살벌하게 빠른 종족 번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대시켜 나간다. 지금 스타리그에는 저그의 힘을 누를 또 다른 세력은 없는 듯하다. 저그의 불 같은 기세를 누가, 어느 종족이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스타크래프트 리그. 음지에서 숨죽이고 있던 저그가 이제 막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전장의 지배자로 우뚝 섰다. 저그 특유의 공격적 성향으로 게임판을 휩쓸더니 급기야 이곳 저곳에 깃발을 꽂으며 저그시대를 공고히 한다.
저그족으로 첫 우승을 일궈낸 박성준이 저그시대의 토대를 닦았고 뒤를 이은 박태민과 함께 저그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리고 이제 마재윤으로 이어지면서 저그 전성시대는 절정을 맞고 있다
# 저그시대…전쟁은 지금부터다
저그는 더이상 음지의 종족이 아니다. 투신 박성준이 등장하기 전, 아다시피 홍진호와 조용호로 대표되는 ‘호호저그’는 늘 2인자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록 개인적으로 높은 인기는 얻고 있었겠지만 정규 시즌에 우승 한 번 못해본 저그족 전체로서는 자존심이 뭉개지고 말 그대로 저주받은 종족과 다름 없었다.
바람(폭풍, 목동)처럼 지나가버릴 리더가 아닌, 진정한 왕으로 숭배할 존재가 저그족에게 필요했다. ‘투신’ 박성준과 운영의 마술사 박태민은 벼랑 끝에 몰린 저그족에게 혜성처럼 나타난 구세주였다.
저그가 지닌 모든 징크스와 약점을 털어버리고 2회 우승이라는 저그 초유의 기록을 세우며 앙숙 테란과 프로토스를 승리자의 반열에서 패배자로 끌어내린 박성준은 저그대왕으로 추앙받기에 충분하다. 한 끗발 모자란 듯한 저그플레이어의 모습에 등 돌렸던 저그마니아들은 완벽한 운영의 마술사 박태민의 플레이에 환호성을 질렀고 희망을 갖게 됐다.
실제로 박성준과 박태민은 저그족만이 가질 수 있는 2가진 강점을 동족은 물론 타 종족에게 깊게 각인시켰다. 그것은 저그의 대담한 공격성과 얼음같은 냉혹함이 수반된 두려움이다. 투신 박성준은 정확한 타이밍에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무시무시한 저그만의 공격력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박태민은 냉정하게 공격을 준비하고 일단 시작하면 일말의 아량도 없이 상대를 깨끗히 제거하는 잠재된 저그 특유의 냉혹함을 되살렸다.
# 투신의 등장에 이은 마법 저그와 천재 저그
저그 전성시대를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은 다름아닌 박박저그의 뒤를 이은 천재저그 마재윤이다. 그는 지난 우주배 MSL에서 프로토스의 영웅 박정석을 누르고 올해 3번째 저그 우승을 알렸다. 저그시대가 저그 전성시대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지난해 ‘질레트 스타리그’에서 박성준에게 무릎을 꿇었던 박정석은 또 한번 저그 마재윤에게, 그것도 6연승 무패 신화를 이어가던 부산에서 또다시 무너지면서 프로토스족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아! 저그의 힘이 이토록 강해졌단 말인가’하고. 마재윤의 MSL우승으로 최근 열린 4개의 방송대회 겸 정규 개인리그 중 3개 리그 우승이 저그에게 돌아갔다.
저그의 강세는 팀리그인 프로리그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스카이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우승팀 SK텔레콤 T1에 박태민이 없었다면 우승이 가능했을까. 개인전과 팀플전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출격한 박태민은 KTF와 맞붙은 결승전에서는 개인전과 팀플전 2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결승 MVP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전기리그 3위 GO팀에는 마재윤과 이주영이 확실한 주전멤버로 자리를 굳혔고 한빛스타즈에서는 김준영이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다. 김준영은 에이스 결정전을 포함해 팀 개인전에 가장 많이 출전해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확인시켰고 그만큼 팀 성적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밖에 준우승팀 KTF매직엔스의 홍진호와 조용호, 삼성전자 칸의 변은종이 개인전과 팀플전에서 두루 활약하며 팀의 기둥노릇을 하고 있다.
# 프로게이머 랭킹도 저그판
저그 전성시대는 각종 리그에서 드러난 성적에서 뿐 아니라 협회가 매달 발표하는 프로게이머 랭킹에서 더 잘 나타난다.
8월 초 발표된 프로게이머 랭킹 1위는 박성준. 박태민이 4위, 8위와 9위는 홍진호와 조용호가 차지했다. 10위까지에 저그는 4명, 20위까지 8명, 30위까지에는 총 12명이 포진했다. 테란이 10위권에 5명을 올려 가장 많았지만 30위까지 치면 11명으로 저그보다 작다. 프로토스는 10위까지 박정석 단 1명, 20위까지도 박용욱과 이재훈 뿐이고 30위까지 치면 단 6명 밖에 없다.
불과 1년 전 테란과 프로토스 일색이었던 랭킹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김창선 해설은 “저그의 부활은 반대로 테란과 프로토스의 몰락으로 빗대 얘기된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한 경기 한 경기가 말 그대로 순간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 격전장으로 바뀐 것이 어찌보면 저그족 특유의 게임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며 “저그를 창조한 신이 있다면 ‘상대의 반응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전장의 분위기가 고조되면 될 수록 힘을 얻는 것은 바로 저그족’이라고 귓뜸해줄 것 같다”고 말했다.
<임동식기자 임동식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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