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산자부여 과감하라

한국에도 2010년이면 중핵기업 300곳이 생겨난다. 이 중 100개는 글로벌 중견 부품소재기업으로 발돋움한다. 이것이 올 초 정부가 발표한 생각이요 비전이다. 중핵기업이 되면 특전이 주어진다. 취약한 국내 부품소재산업을 글로벌 경쟁 속에서 키워 나가려면 이 길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은 될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모든 기업이 중핵기업 지원대상에 뽑히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업계의 이목은 어떤 기업이 중핵기업 지원대상으로 선정되느냐, 또 그럴 자격이 있느냐에 쏠려 있다. 배제된 기업들은 불만과 불평을 늘어 놓을 것이고 시비를 걸 것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지금까지 금기시해 왔던 호혜정책의 탈피를 천명했다. 자원이 정해져 있는만큼 골고루 나누어 주기보단 될성 부른 곳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자원의 집중이라는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품소재 중소기업을 단 한번이라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성장과 발전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있는지 헤아려 봐야 한다. 사실 그간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에 급급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기성천외한 제도가 없어진 지 오래지 않다는 게 그증거다.

 이렇다 보니 수십년간 고만고만한 중소 부품소재기업만이 즐비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내놓을 만한 대표기업 하나 제대로 없는 실정이다. 이들은 스스로 자원을 집중시켜가며 성장하는 데 늘 실패했다. 외려 새끼를 쳐가며 분산만을 일삼았다. 때론 다 일궈놓은 밭을 대기업에 빼앗기기도 했다. 중소기업에 관한 한 경쟁과 성장보다는 생존을, 집중보다는 형평과 균형을 정책기조로 삼았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지금 중국은 국가가 앞장서 기업들 간 자원 집중을 유도하고 있다. 국내기업은 물론이고 해외기업들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중소기업의 천국 대만도 한국의 대기업제도 연구에 한창이다. 대만인들의 소원인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해서다. 대만은 가장 성공적인 중소기업 기반 경제성장모델로 평가받지만 스스로는 한계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이미 1차로 100개 기업이 장차 중핵기업이 될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사실이라면 야심찬 중핵기업 프로젝트가 바야흐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영 개운치 않은 얘기가 들린다. 선정된 중핵기업 지원대상 명단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소문이다. 공개하면 파장이 너무 크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해명까지 곁들여서다. 이해는 간다. 특혜성 시비에 휘말릴 경우 정부는 물론이고 해당 기업까지 곤욕을 치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를 십분 고려하더라도 명단을 공개치 않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정책의 정당성마저 훼손시킬 우려가 크다. 이왕 팔을 걷어붙인 이상 당당하게 명단을 공개하고 선정의 타당성도 떳떳하게 검증받아야 한다. 그래야 정책에 힘이 실리고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시시비비에서도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

 명단 공개를 꺼리는 데에는 선정 기준의 모호성도 한몫하는 듯하다. 지금까지 공개된 중핵기업의 기준이란 2010년에 연간매출 2000억원, 수출 1억달러가 되는 기업이다. 이 기준은 지금 논의되고 있는 중견기업 기준과 흡사하다. 이 기준은 비슷비슷한 덩치의 기업들이 많은만큼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명쾌해야 한다. 글로벌기업이란 덩치가 아니라 세계 시장을 경영하는 속성에 있다. 내수로 아무리 덩치가 커진다 한들 글로벌 반열에는 올리지 않는다. 중핵기업이 글로벌 중견기업의 토대라면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곳이어야 한다. 부품소재산업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라도 산업자원부는 명확한 기준과 자세로 과감해져야 한다.

 <유성호 디지털산업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