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SI협력업체들의 침묵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대형 시스템통합(SI)업체들의 불공정 거래사례를 적발하고, 경고 및 시정명령을 내렸다. 대형 SI업체와 협력업체인 중소 SW업체 간 불공정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그동안 복마전으로까지 인식돼 온 SI시장의 관행이 공정위가 밝힌 수준 정도라고 믿는 종사자들은 거의 없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레퍼런스를 확보하기 위해 힘들게 개발한 제품을 거의 헐값에 SI업체들에 제공했거나, 말로 다하지 못할 서러움을 당했다고 하소연하는 중소 SW기업 CEO가 한둘이 아니다. 제품의 성능보다는 인적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SI시장 구조가 왜곡될 대로 왜곡됐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SI시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왜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SI업체와 사업을 하느냐고 되묻는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IT산업 구조는 SI기업을 통해서만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일반 기업들은 물론이고 정부나 공공기관 대부분은 매출도 변변치 못하고 기술적으로 입증이 안 된 중소 SW업체 제품을 자신의 IT시스템에 도입하기를 꺼린다.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 여기서 삼성이나 LG 등의 브랜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또 해당 그룹계열사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룹 내 SI기업을 통해야만 한다. 철저한 갑을 관계가 구축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소 협력업체들이 대형 SI업체들에 불만을 털어놓고 개선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SI업체들도 할 말은 많다. 협력업체들에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겠느냐며, 오히려 하소연한다. 프로젝트 발주자들은 기술과 가격을 심사해 우선협상자를 선정해 놓고, 다시 가격협상을 벌인다. 떨어진 경쟁기업들이 제안한 가격 수준으로 낮추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금액으로 입찰을 따냈지만 결국은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계약을 하게 돼 처음부터 적자에서 시작하고, 여기에 수시로 프로젝트를 변경하며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한다. 오죽했으면 대형 SI기업들이 지난해 공공기관의 대형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렇다고 해서 대형SI업체들이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발주자와 대형 SI기업 간의 문제는 대형 SI기업과 중소 협력업체 간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대형 SI업체들은 발주자에게 싫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왜곡된 SI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대형 SI업체들이 앞장서 발주자들에게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 지난해 SI업체들의 참여기피로 정부의 발주금액이 상향조정된 것은 좋은 예다. 발주자들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앞장서야 할 대형 SI기업들이 발주자 앞에서는 숨을 죽이고, 자신들만 바라보며 사업을 벌이는 협력업체들에 피해를 전가했다면 이는 법 이전에 기업윤리의 문제다.

 수십 년 동안의 관행이 한번의 조사와 징계만으로 개선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일단 SI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가 확인된 만큼,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함은 당연하다. 이에 앞서 대형 SI업체들의 반성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공정위의 조사가 진행되자 SI업체들마다 중소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잇달아 외치고, 결과발표 이후에도 사전에 철저히 대응했다면 빠져나갈 수도 있던 문제라는 식의 태도는 SI산업의 병폐를 치유하는 데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번 공정위의 조사에 대해 잔뜩 기대를 걸었던 중소 협력업체들은 과징금 부과도 없는 공정위의 징계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이들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형 SI기업들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양승욱부장@전자신문, sw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