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광안리 해변의 열기를 자신들에 대한 응원으로 여긴 듯 결승전은 SK텔레콤 T1의 압승으로 끝났다.
당초 프로게임팀 감독 등을 포함한 프로리그 전문가들은 6대 4 정도로 KTF매직엔스의 우세를 점쳤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선발 엔트리가 발표될 때부터 SK텔레콤 감독과 선수들은 엷은 미소를 띤 반면 KTF매직엔스 측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실제로 SK텔레콤 T1은 초반부터 기세를 잡아 나갔다. T1 선발 전상욱은 초반 투 배럭에 이은 마린과 SCV를 대동한 올인 러시로 매직엔스 선발 박정석을 4분 30초만에 꺾었다. 부산 불패 신화를 이어가던 박정석의 얼굴에는 침울한 표정이, KTF매직엔스에는 암울한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초반 기선제압에 성공한 T1은 2번째 팀플전까지 완벽하게 전략적인 승리를 거뒀다. 박태민과 김성제 조합을 내세운 T1은 초반 방어는 물론 공격 전술에서 완벽하게 우위를 점했다. 김성제는 팀플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리버 생산과 콘트롤을 선보였고, 박태민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 상대편 홍진호와 김정민의 합동 공격을 보란듯이 단독으로 방어해 냈다.
박태민과 변길섭 맞붙은 세번째 경기는 이번 결승전의 하이라이트. 3차전 마저 질 경우 벼랑 끝에 몰리는 KTF 매직엔스의 상황이 변길섭의 플레이에 그대로 나타났다. 변길섭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가운데 오로지 승리를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준비된 ‘운영의 마술사’ 박태민의 완벽에 가까운 경기운영에 손을 들고 말았다.
네번째 경기는 전패의 위기에 몰린 KTF 매직엔스가 최강 팀플팀이라는 닉네임에 한가닥 자존심을 세운 경기였을 뿐이다. 매직엔스 박정석과 홍진호 조합은 화려한 개인기와 노련함의 극치를 T1 팀플조를 상대로 과시했다.
마지막 제 5경기. 매직엔스는 정규 시즌 무패의 핵심이자 에이스 결정전의 사나이 강민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강민만 이겨준다면 이후 팀플 승리에 이은 최종 에이스 결정전으로 승부를 미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T1의 쪽집게 엔트리와 이를 바탕으로 연습해 온 전술에 그대로 밀렸다. T1 박용욱은 한발 빠른 질럿 러시와 이를 통해 얻은 미세한 물량 차이를 끝까지 유지하며 KTF 매직엔스의 마지막 희망 강민을 누르고 SK텔레콤 T1에 대망의 스카이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우승컵을 안겼다.
이로써 SK텔레콤 T1은 지난해 프로리그 2차 대회 우승에 이어 두번째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며 5000만원의 우승 상금을 챙기게 됐고 KTF매직엔스는 게임계의 ‘레알 마드리드’라는 닉네임에 어울리지 않게 프로리그 무관이라는 불명예를 털어내지 못했다.
◆인터뷰-SKT T1 주훈 감독
- 우승 소감은
▲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너무 기쁘고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다들 잘해주었다.
- 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은
▲ 팀웍이다. 이번 결승전을 앞두고 선수 전원이 개인리그를 포기하면서까지 집중적으로 팀웍을 쌓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선수는 물론 코칭스텝 전부가 혼연일체가 돼 연습했고 우승을 따 내자는 공동 목표로 결집됐다. 이것이 우승의 원동력이다.
- 언제 우승을 예상했나
▲ 개인전 1경기와 팀플전 2경기에 상대팀 출전 선수둘을 예측한 것이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초반 두 경기를 이길 수 있었고 특히 우리팀이 약한 것으로 평가된 두번째 팀플전에서 이기면서 어느 정도 우승을 예감했다. 또 5경기에서 원래는 박정석 선수를 예측하고 내보낸 박용욱 선수가 같은 프로토스 종족인 강민 선수를 잡아낸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 임요환 선수를 개인전 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 요환이는 이번 결승전이 최종 7차전까지 가게 됐을 때 마지막 에이스 결정전에 내보내려 했다. 요환이의 명성과 인기, 그리고 이번 대회의 비중을 생각해서라도 7경기까지 가게 되면 승부에 상관없이 요환이를 출전시키려 했다.
- KTF팀에게 한마디 한다면
▲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우리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KTF도 열심히 준비한 것으로 안다. 아쉽겠지만 다음번 후기 리그에서 잘해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 멋진 승부를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승과 MVP에 선정된 소감은
▲ 무엇보다 우리팀이 우승한 것이 기쁘다. 개인적으로는 팀 우승에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아 MVP를 받게 돼 더 기쁘다. 팀원 모두가 열심히 연습한 덕분이다. 모두가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 연습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 그렇다. 팀웍을 다지기 위해 서울에서도 많이 했고 이곳 광안리에도 목요일에 내려와 함께 합숙하면서 연습했다. 그 과정에서 싸우기도 하는 등 갈등도 있었다. 그러면서 팀웍과 우승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던 것 같다.
- 팀플과 개인전 2경기 모두 이겼다. 컨디션이 좋았나
▲ 사실 그렇게 좋지 않았다. 아침에 감기 기운도 좀 있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을 앞두고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결승전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나가고 싶었다. 전기리그 동안 팀에 많은 보탬이 못 된 것 같아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고 싶었다. 맵이 내가 원하는 맵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준비했다.
- 이번 우승의 원동력은
▲ 정말 나 하나만이 이뤄낸 것이 아니라 팀원 전체가 이뤄낸 것이다. 우승하기까지 과정에서 느낀 점도 많다. 그랜드파이널까지 우승해서 나 스스로 최고의 선수라는 것을 느끼고 우리팀이 최고의 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하겠다.
<부산=임동식기자 임동식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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