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패배였지만 역시 게임에서 지면 화가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상대가 여성일 경우에는 더욱 그런 감정이 든다. 아무리 ‘게임치’로 통하는 나일지라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기존 FPS게임이었던 ‘카르마온라인’을 맛본 경험이 있어 ‘게임치’이지만 자신있게 ‘건즈온라인’을 선택했다. 또한 혹시 한번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승심에 여성 유저였으면 하는 바램을 회사측에 부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완벽한 패배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역시나’라는 결과를 낳았고 한수 배움의 자세를 갖게 만들었다. 3주동안 나를 ‘건즈온라인’ 고수로 만들어줄 사람은 여성 유저다. 어찌보면 차라리 남성을 선택했어야 창피함이 덜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쨌든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는 생각을 갖고 게임 고수가 되는 험난한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FPS게임에서 손을 놓은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러나 ‘건즈온라인’이 FPS 장르이기 때문에 과감히 선택했고 그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 게임개발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간과한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건즈온라인’의 캐릭터를 만들어 ‘00차니’란 애칭까지 달아주고 우선 1레벨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어차피 FPS게임이 주는 매력이 레벨이 높은 상대방일지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매력을 한층 느끼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과감하게 1레벨로 나의 스승 크로우직녀를 상대했다. 그녀의 레벨은 60. 무려 59계단을 한꺼번에 뛰어넘으려는 얄팍한 꼼수였다. 난 크로우직녀를 상대하기 위해 소지할 수 있는 무기인 칼과 총, 수류탄만 챙기고 전장터로 돌진했다. 그러나 ‘건즈온라인’에 접속하면서 내가 얼마나 준비가 안됐는지를 뼈저리게 느낄수 있었다.
3D FPS게임이 갖고 있는 어지러움을 간과한 것이다. 무려 2년 전에 들장했던 FPS온라인게임에 대한 기억만을 갖고 덤벼든 나에게 미쳐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장벽이 등장하고 만 것이다.
“이상하다. 예전 FPS게임은 이렇게 어지럽지 않았는데 왜이렇게 어지러운거야?”
크로우직녀는 ‘건즈온라인’이 다른 FPS온라인게임에 비해 어지러운 현상이 더 심하다고 조언했다. 예전 FPS게임과 비교하면 ‘큰 코 다친다’는 충고아닌 충고와 함께.
그녀의 말대로라면 우선은 어지러운 현상에 대해 익숙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바로 시작하려던 대전을 잠시 뒤로 미루고 혼자 열심히 어지러움에 익숙해지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환경적응 훈련을 했다.
크로우직녀는 내가 어느정도 게임을 진행하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자 기본적인 스킬을 가르쳐 주었다. 크로우직녀가 마우스를 사용해 ‘건즈온라인’을 하기 때문에 나 역시도 마우스를 쓰기로 하고 1대1 대결에 들어갔다.1대1 대결은 20전 2승18패라는 대기록을 남기며 나의 참담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2승의 기쁨도 있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욱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처음 10번의 대결에서 크로우직녀가 이겨보려는 나의 안쓰러운 모습때문에 져줘서 얻은 산물이었다.
그런 내막도 모르고 고수를 만나 승률 20%란 결과를 얻게 된 나의 “고수도 별거 아니네”란 한마디가 크로우직녀를 자극시켰고 이후 처참한 전패의 쓰라림을 안게됐다.
“우선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는데 주력하세요. 그런 다음에 맵에 따른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아요”
패배의 원인은 캐릭터 컨트롤에 있었다. A, S, D, W, 1, 2, 3, 4, 5의 키보드와 함께 마우스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건즈온라인’의 인터페이스. 가장 전형적인 FPS게임의 인터페이스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2년 넘게 게임을 하지 않은 나에게는 역시 무리가 있었다. 자신감은 금방 실망감으로 바뀌었고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익혀야 하나 하는 부담감을 갖게 됐다. 하지만 컨트롤이 안되면 FPS게임을 마스터할 수는 없는 노릇. 여하튼 캐릭터를 컨트롤 하는 문제는 다음주까지 미루기로 하고 어떤 것이 잘못됐는지를 하나하나 짚어나가기로 했다.크로우직녀는 나의 캐릭터 컨트롤 문제를 거론한 후 나에게 맞는 조준점, 장칼과 총의 장단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또한 총탄을 피하는 법과 ‘건즈온라인’의 특징인 벽을 타며 사격하는 법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물론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져야 가능한 기술들이지만 크로우직녀의 시현장면을 보며 처음으로 ‘건즈온라인’을 선택한 것이 탁월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FPS게임은 매우 민감해요. 가장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되는 환경을 우선적으로 만들어야 해요. 또한 무기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상황에 맞춰 사용할 수 있어요”
기본에 충실해야 FPS게임의 최고수로 가는 길이 한결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녀의 가르침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건즈온라인’을 시작하기로 했다. 캐릭터별 능력치를 상세히 파악하고 나에게 맞는 캐릭터를 선택했다. 무기도 근접전보다는 원거리 공격이 나에게 어울리는것 같아 총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제 1승을 향한 기본적인 준비는 갖춰진 셈이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어지러움과 인터페이스를 숙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일주일이면 충분히 그 벽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 ‘건즈온라인’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항들이 갖춰졌으니 인터페이스만 제대로 익히면 1승이 요원하진 않을거예요. FPS게임에서 고수를 이기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게 발생하니까 다음주 1승은 할 수 있을거예요”
크로우직녀의 이 한마디는 나에게 참담한 패배를 넘어선 희망을 안겨줬다. “그래, 다음주 크로우직녀에게 1승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세웠다.
고수 소개
크로우직녀. 본명은 백지선. 61레벨로 ‘건즈온라인’ 경력은 1년 6개월된 배테랑 여전사. 나이는 21살이며 광주직할시에 살고 있다.
<안희찬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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