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씬시티

프랭크 밀러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 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의 ‘씬 시티’는 매우 대담한 실험으로 우리 눈을 사로잡는다. 로드리게즈의 야심에 가득 찬 실험은 성공했다.

그는 흑백의 콘트라스트가 강한 조명과 촬영으로 인물의 외곽선을 강조하는 인상적인 만화적 연출을 시도했고, 특히 원색의 강렬한 컬러를 부분적으로 시도하여 컬러 영화보다 더 강렬한 색채적 이미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와 소설과 만화는 내러티브를 갖고 전개된다는 점에서 영역의 겹침 현상을 드러낸다. 각 장르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내러티브는 다른 영역으로 이동 가능하다. 타 장르의 영역 안으로 침투한 내러티브는 그 본질은 유지한 채 색다른 빛깔로 재창조될 수 있다.

그러나 문자적 상상력의 특성으로 내면적 흐름을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는 소설이나, 문자적 특징과 영상적 특징을 빨아들이며 내면적 흐름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을 가능케 하는 만화의 장점들은, 지금 영화로 흡수 대통합되고 있다. 영화야말로 현 단계 대중 매체의 최강자다.

프랭크 밀러의 만화 ‘씬 시티’가 영화화되는 것은 그러므로 새로운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로베르토 로드리게스에 의해 영화화 된 ‘씬 시티’는 그 어떤 만화의 영화화보다 대담한 시도를 하고 있다. 로드리게스 감독은 정말 만화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부패와 범죄로 가득 찬 도시 씬 시티에서 일어난 어린이 유괴사건으로 시작한 영화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가슴 짜릿한 멜로 이야기로 끝난다.

‘씬 시티’의 이야기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유괴범 이야기와 동침한 창녀가 다음 날 살해되자 그 복수를 시도하는 건달 마브(미키 루크 분)의 이야기로 크게 갈라진다. 그러나 두 가지 이야기는 서로 연결된다. 은퇴를 한 시간 앞둔 형사 하티건(브루스 윌리스 분)은 씬 시티 권력의 핵심인 상원의원 아들 로크가 어린이를 유괴한 현장에 도착한다. 로크는 유아 성추행 살해범이다.

마브는 자신을 따뜻하게 이해해 준 창녀 골디가 다음 날 아침 자신과 같이 잔 침대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그 살인범으로 경찰에게 쫓기게 되자, 골디를 살해한 범인을 추적한다. 창녀들의 거주 지역인 올드 타운의 치안은 창녀들의 보스 게일을 중심으로 자치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경찰과 상호 평화 협정을 맺었지만, 부패한 형사반장이 살해되면서 협정은 깨지고 대규모 전쟁이 발발한다. 그 사건에 휘말린 사진작가 드와이트(클리브 오웬 분)를 비롯해서 올드 타운과 인연을 맺고 있는 등장인물들은 변두리의 바 ‘케이디스 클럽’으로 모여든다.

그곳에는 예전에 유괴범에게 납치되었다가 하티건에 의해 풀려난 어린 소녀 낸시가 성장한 스트립 댄서로 일하고 있다. 낸시는 권력의 모함에 의해 감옥에 수감된 하티건 형사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편지가 오지 않자 낸시의 안전을 걱정한 하티건은 탈옥해서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케이디스 클럽’으로 향한다.

로드리게스 감독은 만화적 그래픽을 영화적 비주얼로 완벽하게 재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원작 만화가 갖고 있는 핵심적 요소, 음울한 범죄 현장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재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독창적 연출과 만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캐릭터들의 절묘한 조화가 새로운 영상예술을 창조한 것이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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