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컬렉션]세계를 뒤흔든 불멸의 게임(43)라그나로크

‘라그나로크’는 국내 게임 역사상 최초로 37개국에 진출한 작품이다. 제작사 그라비티는 나스닥까지 상장하며 쾌속 질주를 거듭하고 있지만 시작은 역시 미미했다. 게임 종주국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라그나로크’는 한류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것이다.

지난 2002년 9월 29일 현직 모 학교의 교무주임이었던 마에카와 히로시라는 사람이 평소 자신이 즐겨했던 온라인게임으로 오프라인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장소는 일본 도쿄 산업플라자 대전시실이었고 480평의 적지 않은 규모였다. 이미 2001년도에 1회 페스티벌을 개최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터라 주최측이 장소를 대폭 넓힌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일본 전국에서 약 400여 개 동인회와 만오천명의 유저가 몰려들었으며 주최측은 밀물처럼 몰리는 인파를 감당할 수 없어 동인회마다 입장 시간을 별도로 배정해야만 했다. 행사는 어떠한 업체의 지원도 없이 순수하게 동인회들이 힘을 모아 개최된 것이며, 외국 게임으로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을 모은 사례는 일본 역사상 거의 없었다.

이 게임이 바로 ‘라그나로크’다. 마에카와 히로시씨의 초청으로 페스티벌에 참가한 그라비티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감격에 젖었다. 한국의 게임이 게임 종주국 일본에서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행사에 참가한 일본 유저들이 ‘라그나로크’를 통해 인터넷, PC, 온라인게임을 처음 접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던 것이다. 하나의 온라인게임으로 콘솔 게임기에 집중된 일본 유저들의 성향까지 바꾸고 말았다.

# 성공의 시작은 누구나 미미하다

‘라그나로크’의 성공은 현재도 계속돼 그라비티를 나스닥 상장까지 성공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작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1994년 11월에 5명의 사람들이 컴컴한 한 지하실에서 모였다. 이들은 김학규, 신현우, 김세용, 박동훈, 강진우 등이었고 하이텔 게임제작동호회에서 친분을 쌓은 인물들이었다. 모인 이유는 ‘우리도 게임을 만들어서 용돈이나 벌자’는 것.

장소는 김학규(현 ICM게임스 사장)씨가 살고 있던 연립주택의, 창문도 없이 환풍기만 딸랑 하나 있는 3평짜리 지하 창고였다. 딱 2달 동안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자고 뜻을 모았지만 일년이나 걸리고 말았다.

이때 만들었던 게임이 횡스크롤 액션 ‘라스 더 원더러’다. 각자 생업과 학업에 종사하면서 저녁에 잠깐 모여 작업한 결과물을 짜맞추는 수준이었지만 완성도는 높았다. 하지만 불법 복제로 인해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의 모험은 지칠 줄을 몰랐다. 게임에 대한 열정만으로 버틴 결과, 조금씩 게임 바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손노리와 공동 개발한 ‘악튜러스’를 출시해 약 7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다.

그리비티라는 회사명의 유래도 독특하다. 병특 훈련을 갔다온 김학규씨가 “훈련 조교가 중후함, 무거움이라는 의미로 그라비티를 말했는데 마음에 들었다. 그걸 우리 회사명으로 사용하자”고 해서 그냥 정해졌다.

그리고 2001년부터 ‘라그나로크’ 개발에 착수했다. ‘악튜러스’를 출시하고 온라임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했지만 딱히 할 만한 소재가 없어 오랜 시간을 토론과 회의로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결국 친분이 있었던 이명진씨와 함께 동명만화 ‘라그나로크’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키로 했다. ‘아일랜드’ ‘프리스트’ 등 많은 만화들이 물망에 올랐으나 팬터지풍에 가장 적합한 작품은 당시 만화 ‘라그나로크’가 최적이었다.

창립 멤버 중의 한 사람인 신현우(현 스튜디오 실프 개발실장)씨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골방에서 라면만 먹으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게임을 만들었어요. 남자들만 있고 다들 게을러서 수박이 한달동안 제자리에서 말라비틀어지는 것도 목격했다니까요.”라며 지난 일을 회상했다.

# 불멸의 기록 세계 37개국 진출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라그나로크’는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많은 유저들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재미의 게임 플레이와 3등신 캐릭터 디자인에 마음을 뺏겼다. 일본 콘솔 게임의 냄새가 배어있었지만 이미 일본 문화에 익숙한 유저들은 저항없이 받아 들였다. 그리고 이런 형식은 해외에서도 먹혔다.

2002년 국내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으로 일본, 대만, 미국, 태국, 브라질, 유럽 등 현재까지 5대양 6대주 37개국에 진출하는 불멸의 기록을 작성했다. 지금까지 단 하나의 온라인게임이 마치 자동차 수출처럼 이렇게 많은 나라로 진출한 역사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지난 2월 8일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그라비티는 명실공히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라그나로크’의 가장 큰 특징은 귀여움이다. 이명진 작가가 직접 그린 캐릭터는 게임에서 뿐만 아니라 각종 캐릭터 상품으로도 커다란 인기를 모을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래서 플레이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체험할 수 있는 색다른 시스템도 가능했던 것이다.

게임의 초반은 다른 온라인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레벨이 올라가면 결혼, 입양, 큐펫, 카드 시스템 등 기본적인 플레이 외에 게임 내에서 놀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시간이 흘러 업데이트가 계속 이뤄지면서 직업만 34가지가 되는 등 점점 복잡해져 갔지만 ‘포링’으로 대표되는 ‘라그나로크’만의 독특한 색깔은 잃지 않았다.

이제 국내에서 ‘라그나로크’의 인기는 서서히 저물고 있는 상황이지만 해외는 이제 시작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 매우 크다. 한국 영화의 수출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2004년도 게임 수출액은 무려 3억8000만 달러나 된다. 그 한 가운데 서 있는 게임이 바로 ‘라그나로크’인 것이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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