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CEO "비상구 없나?"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요새 지방 정보기술(IT) 업체 사장(CEO)들의 토로다.

 최근 들어 지방 IT업계의 침체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회사경영은 물론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장들이 늘고 있다. 전직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잠수를 타거나’ 자살이나 과로사 등으로 ‘세상을 등지는’ 경우까지 속출하고 있다.

 만성피로와 자금난으로 인한 해외 도피, 스트레스와 이에 따른 돌연사 등은 CEO 개인의 손실은 물론이지만 각종 벤처사업 노하우와 같은 자원의 소멸이라는 차원에서 회사와 지역 IT업계의 손실이자 국자자원의 손실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손실을 막기 위해 정부도 실의에 빠진 CEO들에 대한 체계적인 재정착 프로그램 등에 대한 검토도 한번쯤 고려해 볼 만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방업체 CEO들은 피곤하다=최근 들어 지방 IT업체 사장들은 “가도 가도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벤처지원 정책에 기대서 연말까지만 버텨보자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상황이 나은 업체들의 말이다. 다수의 업체들은 말 그대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광주 광통신 부품업체 박모 사장은 쉴 틈이 없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재고를 확인한 뒤 하루 일과를 짠다. 8시 무렵,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면 결재서류를 처리한 후 곧바로 생산라인 가동에 들어간다. 이러다 보면 점심. 오후가 되면 한국광기술원에 들러 장비사용 가능 여부와 연구개발 프로젝트 진행사항을 파악한다. 투자자들을 만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저녁이 다 된 시간에 회사로 돌아와 다음 달 주문 물량과 재고를 파악한 뒤 잡무를 처리하고 밤 8시가 넘어서야 회사를 나선다. 12시간 이상 강행군하다시피한 박 사장은 동종 업계 사장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다 자정이 훨씬 넘긴 시간에야 귀가한다.

 박 사장은 경영할 회사라도 있으니 낫다. 지난 2002년 대기업과의 온라인 교육협약을 체결, 온라인 교육시장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던 대구지역 S사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대표자의 마케팅 역량부족과 열악한 자금사정 때문이었다. 이 회사 K사장은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다는 이유로 도피하다시피 중국으로 건너갔다.

 ◇CEO들이 죽어간다=더 심한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대덕밸리에서는 최근 한 벤처기업인이 사무실에서 연구·개발을 하던 중 과로로 숨져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46세로 세상을 떠난 N사 사장은 한국화학연구원 출신으로 연구원 시절 퀴놀론계 항생제 중간체 제조기술 개발로 연구소가 다국적 제약회사로부터 100만달러의 기술이전 계약료를 벌어들이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뛰어난 연구 능력으로 주목받던 그는 지난 2000년 직원 6명과 함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기술창업지원단에서 본격적인 창업 활동에 나섰으나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자금난 속에서도 신약 개발업체의 성공사례를 만들어보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던 그는 지병인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등 증세가 악화됐지만 연구일정을 미룰 수 없다며 제대로 치료 한 번 받지 못한 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사무실에서 홀로 연구개발에 매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전자상거래업체 E사의 사장도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해 지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39세의 K사장은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 아침에 깨어나지 못했다. 이른바 ‘돌연사’였다. 함께 살던 가족조차 그의 죽음을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숨을 거뒀다. K사장은 자금난을 겪으면서 회사매각 등을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은 없는가=지방 IT업체 CEO들의 어려움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극한에 달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IMF 때보다 더 심한 불황”이라는 지방 IT기업 CEO들의 말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들이 심리적·신체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때일수록 CEO 개인이 건강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음주나 흡연은 오히려 자멸의 길을 재촉하게 된다고 충고한다.

 일부에서는 정부기관이나 단체들이 이러한 CEO의 어려움을 그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종경영컨설팅의 한우수 사장은 “지방 CEO들의 기술이나 노하우 역시 국가자원인만큼 평소 건강교육을 실시하거나 실의에 빠진 CEO들에 대한 아웃플레이스먼트 프로그램을 마련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국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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