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인간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장자의 제물론이라는 책에 나오는 호접몽처럼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게임 내에서 방송을 하고 연주를 하는 가하면 애인을 사귀고 결혼식까지 올린다. 심지어는 관객을 불러 모아 놓고 연극 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마비노기’에서 ‘fntsy’ 길드가 벌였던 연극을 연출했던 화제의 게이머 최지혜씨(27·ID Sielline)를 만나봤다.
“사실 저는 게임하고는 거리가 멀었어요. 지난해 2월 ‘마비노기’가 오픈베타를 시작할 때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했어요.”
지난 99년부터 하이텔 TRPG(Table talk RPG)에서 활동해온 최지혜씨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마비노기’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게임에 입문하게 됐다고 한다. TRPG는 한마디로 마스터가 하나의 퀘스트를 주면 배우(플레이어)들이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채팅 연극이다. 최씨가 TRPG에 빠져든 것은 여러 명이 합심해야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기 때문에 끝나고 나면 느낄 수 있는 성취감 때문. 더구나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을 해볼 수 있는 대리만족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한다.
# 연극준비는 갈등의 연속
그가 속한 길드인 fntsy는 MMORPG가 특성상 새로운 필드나 던전이 등장하더라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지기 때문에 게임내의 작곡, 악기연주 스킬을 이용해 연주회를 벌이기도 하는 등 수시로 이벤트를 벌여왔다. 이 길드가 첫 공연을 가진 때는 지난 해 7월 30일. ‘마비노기’의 설정에 맞춰 패러디한 ‘한여름 밤의 꿈’이었는데 최씨는 TRPG의 마스터를 해본 경험 덕에 연출을 맡게 됐다.
“실제 연극처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겪었어요.”
최씨에 따르면 fntsy 길드원들은 7월초부터 각본을 마련하고 홍보에 들어가 공연 1주일전부터 리허설을 했는데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제 연극준비와 마찬가지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배우들끼리 서로 반목하는 일도 생기고 시간을 못 맞춰 연습시간이 늦어지기도 일쑤였다고.
연극을 준비하면서 가장 발목을 잡았던 점은 게임 내에 마련된 소셜 모션이 부족해 아무래도 표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최씨는 대사와 게임내 연주 기능을 이용해 이 같은 난점을 극복했다.
최씨는 던전의 보스룸과 보물상자방을 각각 연극무대와 배우 대기실로 이용했는데 한정된 공간에 3백명 가량 되는 관객이 몰리다보니 공연 중 플레이어들이 튕기는 현상도 어려운 점이었다. 심지어 배우가 몇차례 게임에서 튕겨나가 남은 배우가 애드립으로 위기를 넘기는 동안 튕긴 배우가 열심히 공연장으로 뛰어오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관객 자발적 질서 유지로 호응
“두번째 공연 때에는 관객들이 던전입구에서부터 몇겹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여졌어요. 자발적으로 질서를 유지해줘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fntsy 길드는첫공연에 이어 지난 1월 22일 두 번째 연극 ‘햄릿’을 공연했는데 두 번의 공연 모두 각각 300명 이상의 관객이 몰리는 대성황을 이뤘다.
연극이 화제가 되자 ‘마비노기’를 퍼블리싱하는 넥슨측에서는 배우들이 튕기는 현상을 막기 위해 배우들 이외 플레이어들의 말 풍선을 없앨 수 있도록 GM의 ‘정숙지역’ 기능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 해줬다. 또 ‘마비노기’ 카메라 걸을 동원해 게임 실황을 홈페이지에 생중계해 던전에 들어가지 못한 게이머들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게임 내 몬스터로 말투가 특이한 ‘임프’ 캐릭터로 출연했던 배우는 게임 내에서 유명인사가 됐어요. 다들 그를 보면 ‘임프다’ ‘임프다’하면서 쫓아다녀요.”
최씨는 공연을 통해 ‘마비노기’에서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더구나 큰일을 무리없이 끝내 길드원들이 더욱 단합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큰 성과로 꼽았다.
# 힘들지만 계속할 것
“첫 공연을 하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안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찌하다보니 지난 1월 다시 공연을 하게 됐고 이제는 반기 행사처럼 돼버렸어요.”
최씨는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두번의 공연을 통해 이제 어느정도 노하우도 쌓였기 때문에 올 여름 께 다시 한번 공연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게임은 비록 개발사가 만들지만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다수의 게이머들이 합심해 만들어가고 있다. 게임문화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갈지 기대된다.
<황도연기자 황도연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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