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하정원 모퍼스사장

‘유선과 무선의 만남’. 2000년대 이후 IT업계의 단골 화두다. ‘웹(WEB)’과 ‘왑(WAP)’으로 대변되는 유·무선의 연동이야말로 ‘유비쿼터스’, 즉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에 물려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첩경이다. 그러나 두 선의 접목은 뿌리와 유저층이 다른 탓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휴대폰으로 모바일게임을 하면서 쌓은 포인트를 온라인게임에 활용할 수 있는 신개념 유·무선 연동 서비스 ‘파워짱’이 화제다. 돌풍의 핵은 바로 이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한 모퍼스의 하정원 사장(45). 업계에선 원로(?)에 해당하지만, 그는 요즘 ‘파워짱 전도사’를 자처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 사장에겐 요즘 닉네님이 하나 생겼다. 다름아닌 ‘마당발’. 재작년 10월 모퍼스 설립 이후 ‘파워짱’ 제휴업체를 찾기 위해 모바일과 온라인게임업체들을 손발이 다 닳도록 돌아다니면서 유명인사가 된 결과다. 플랫폼 특성과 하드웨어의 차이로 인해 도무지 연계되기 어려울 것 같은 유무선 게임 연동 서비스 모델을 인식시키기 위해선 발품을 파는 일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 사장은 굳게 닫힌 게임업계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 사장은 “모바일게임만 해도 온라인게임의 경험치를 늘릴 수 있는 개념으로 인해 특히 ‘밸런싱’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온라인게임업계의 장벽과 저항이 예상보다 만만치가 않았다”며 “반복적인 설득작업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지속적인 설명을 통해 업체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젠 어느정도 ‘파워짱’에 대해 업체들이 알고는 있지만, 아직도 게임업체와의 미팅 약속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 사업 잘하는 것도 ‘애국’(?)

 하 사장은 특이한(?) 구석이 많은 사람이다. 이젠 ‘불혹의 벤처사업가’로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지만, 90년대까지만해도 ‘국록’을 먹던 공직자였다. 한양대 행정학과를 나와 서울대대학원에서 행정학위를 받은 그는 1998년 행시(32회)를 패스한 이후 꼬박 11년간 서울시 공무원으로 소위 나랏일을 했다. 공직생활 직전엔 LG증권 채권부에서 잠시 근무했던 경력도 갖고 있다.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 보이는 공직생활을 과감히 청산한 이유가 우선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분명했다. ‘민간기업이 성격에 더 맞을 것 같다는 판단과 좀 더 다이내믹하고 성과에 대한 보상이 분명한 곳에서 제 남은 인생을 걸고 싶었다’는 것. 그는 특히 “기업 경영을 잘 하는 것도 국가에 기여하는 애국”이라고 강조했다.

 늦깎이 사업가이지만, 하 사장의 기업관이나 경영관은 투철하다. “기업가나 공무원이이나 목표에 정진해 성과를 내는 점은 같다고 할 수 있지만, 공직사회는 성과의 기준이 ‘형평성’이라면, 기업에서는 ‘수익극대화’라는 점에서 차이가 많습니다. 따라서 목표달성을 위한 방법론도 차이가 나고, 이 점에서 가치관도 어느정도 달라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공직사회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갑’에서 ‘을’로 위치 변화에서 오는 애로 사항이 많을 듯 하지만, 그는 이미 성과 대비 보상이 뚜렷한 비즈니스 세계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다. 하 사장은 “공무원 생활을 겪으면서 배웠던 업무 로직이나 조직 생활이 사업을 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된다”며 “그러나, ‘공무원적’ 사고방식으로는 비즈니스에 도움이 안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고 말했다.

 # 게임을 만난 것은 ‘운명’

 기업이 좋아서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벤처를 찾은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20∼30대 청년(?)들이 판을 치는 게임쪽을 택했을까. 게임산업의 어떤 매력이 그 스스로 ‘남은 인생을 걸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매료시켰을까. 더구나 그는 40대 이후 중장년층이 대부분 그렇듯이 ‘겜맹’에 가깝다. 오래전 ‘제비우스’나 ‘라이덴’ 같은 오락실 게임을 즐겼을 뿐, 요즘 게임시장의 실세인 온라인게임은 여전히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다.

 게임과의 만남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90년대 후반 우연찮게 ‘버츄얼서울’이라는 시 홍보게임 제작을 진두지휘하게 된 것이 첫 만남이다. 사실 게임이라기 보다는 홍보물에 가까웠지만, 이 프로젝트는 그의 인생의 행로를 바꿔 놓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벤처기업에서 맡은 첫번째 보직이 게임프로듀서였다. 한국디지털드림스튜디오에서 그는 경영기획실장 겸 CFO를 역임하며 애니메이션과 게임프로덕션 분야를 담당했다.

 그 후 모바일 및 비디오게임업체인 넥스젠커뮤니케이션의 대표이사를 잠깐 맡게되면서 게임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넥스젠의 짧은 기업 경영자 경험은 ‘파워짱’ BI개발과 모퍼스 설립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 “2002년이었습니다.

당시 모바일게임업계의 수익모델은 지금보다 훨씬 안 좋았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이 연동되지 않는 한 수익을 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그때부터 ‘파워짱’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가. 하 사장은 이후 파워짱 관련 BM특허를 출원하고 일사천리로 창업모드로 전환했다.

 # 남은 인생은 ‘파워짱’에 올인

 뜻은 좋았으나 창업 전선은 출발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년 가까운 시장조사와 모든 네트워크를 총 동원해 준비한 비즈니스 모델이었지만, 시장의 첫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처음 접하는 비즈니스모델이라 그런지, 선뜻 응하는 업체가 없었다. 일부 생각있는 모바일게임업체 사장들이 ‘온라인게임 유저들을 흡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에 위안을 삼을 정도였다.

 이 때 생각한 세일즈 포인트가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의 은근과 끈기 전략. 최종 결정까지 시간은 많이 소요됐지만, 그의 집요한 설득에 온라인게임업체들도 파워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정원식 마케팅’은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해 작년 11월 본격적인 서비스 오픈 이후부터 회원수와 제휴 게임업체 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온라인게임사나 모바일게임사는 물론이고 이통사들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야 완벽한 유무선 연동서비스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점에서 ‘파워짱’은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모델이라고 자신합니다.” 하 사장은 요즘 한결 자신감이 붙어있다. 게임 플랫폼의 변천사를 보더라도 이제 유비쿼터스나 컨버젼스가 디지털 콘텐츠가 나가야 할 시장이라고 본다면 ‘파워짱’ 모델이 가장 적합하다고 확신한다.

 하 사장은 “우리나라가 온라인게임과 모바일 두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만큼 글로벌 마케팅도 유리하다”며 “이미 2003년 말부터 해외 대형 게임사와의 협력 관계를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사업을 한다해도 아이템은 게임이며, 모델은 파워짱일 것입니다.”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 ‘파워짱’에 모든 걸 건 그의 베팅이 얼마나 높은 배당율로 되돌아올지 궁금하다.=1980년 영동고등학교 졸업

=1984년 한양대 행정학과 졸업

=198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1989년 행정고등고시(32회) 합격

=1989∼1999년 서울시청 근무

=1993∼1995년 미국 카네기멜론대 졸업(MS)

=1999∼2000년 미국 에어넥스 커뮤니케이션 e비즈니스팀장

=2000∼2002년 한국디지털드림스튜디오 경영기획실장

=2002∼2003년 넥스젠커뮤니케이션 대표

=2003∼현재 모퍼스 대표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전자신문>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