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황제` 눈물에 `머슴` 진땀

경기가 끝나자 최연성은 얼굴이 붉게 상기됐고 땀까지 흘렸다. 바로 스승 임요환의 눈물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황제 임요환이 무대 위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자 최연성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최선을 다한 후 끝나면 서로 우승자에게 축하를 보내주자고 약속했건만.

EVER스타리그 결승전이 시작되기 약 두시간 전 최연성과 임요환은 SK텔레콤 T1 주훈감독, 성상훈 코치 등과 함께 경기장 내 선수 대기실로 들어왔다. ‘임요환’ ‘최연성’으로 이름 붙은 각각의 방이 따로 마련돼 있었지만 같은 팀 소속이었던 둘은 언제나 그렇듯 한 곳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경기를 기다렸다. 배가 고팠는지 대기실에 마련된 3개의 도시락을 코치스텝과 나눠먹으며 ‘시간이 없어 머리를 못 깎은 얘기부터 2년전 열린 WCG 2002 대회 때 와봤던 얘기까지 이것저것 잡담을 주고받았다.

임요환은 팀 내 최고참이자 주장답게 비교적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각오를 묻자 “우승에 욕심내지 않고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리고 결과나 나오면 서로 축하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회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예의 그 밝은 미소는 떠나지 않았다.

최연성 역시 “요환 형과 결승에서 맞붙는 것이 껄끄럽기는 하지만 우승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전략적으로 멋진 승부를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임요환에 비해 약간은 굳어보이는 표정이었지만 그 역시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대전까지 내려오는 이동 밴에서 임요환은 자신의 스팀팩을 최연성에게 건네며 선배의 따뜻한 배려를 보여주었다고 주훈 감독은 전했다. 또 최연성이 후배이기 때문에 합숙훈련장을 벗어나 PC방에서 연습했고, 두 선수 모두 승부를 떠나 최선을 다한 플레이를 펼치고 서로 축하해주기로 약속했다고 알려주었다.

3대 2로 결국 최연성이 우승을 확정지으며 경기가 끝나자 테란의 황제 임요환은 아쉬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듯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최연성은 4경기에서 당한 벙커러시 때 보다 더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임요환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고 선수 대기실로 들어와서는 20여분간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어 주위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최연성의 얼굴은 챔피언의 얼굴이 아니었다. 뭔가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 안절부절 못하는 어린아이를 연상케했다. 우승 소감을 묻자 ‘이번 경기로 인해 요환 형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내내 임요환 걱정을 앞세웠다. 임요환에게 한마디 하라고 주문하자 “2년 가까이 우승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우승하고픈 마음이 절실했을 것”이라며 “다음번에는 꼭 우승하길 바랄 뿐”이라고 어렵게 어렵게 말했다.

★최연성 우승 후 스타리그 판도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이윤열로 이어지는 4대 천황의 위세가 여전히 막강하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신예급 선수들의 기세 역시 매섭다. 스타리그 데뷔 2년 안팎의 최연성, 박성준을 중심으로 차재욱, 이재항, 김근백 등 신진 세력이 마치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장강의 물결처럼 천천히, 그리고 위협적으로 스타리그를 잠식하고 있다.

 바로 전 대회인 질레트 스타리그에서 완성형 저그 박성준(이고시스 POS)이 우승했고 이번에는 최연성이 우승했다. 최연성은 이번 우승에 앞서 MBC게임 스타리그 3연패라는 위업을 세웠다. 차재욱은 ‘A급 킬러’라는 닉네임처럼 최고수들을 꺾으며 KT-KTF 프리미어리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 들어 스타리그에서 벌어지고 있는 임요환과 홍진호 등 ‘부활한 4대 천왕 VS 떠오르는 신예의 대결’ 구도는 2005년에도 이어질 전망인 가운데 조금씩 신예들에게 무게 중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4대 천왕은 원숙한 기량을 보이며 이윤열이 8강, 박정석, 홍진호가 4강, 그리고 임요환이 결승까지 올라 ‘죽지않은 노장’의 실력을 보여줬지만 결국 우승 트로피는 차세대 신예 주자에게 내줬다.

주지하다시피 4대 천왕 등 기존 특 A급 선수의 전략은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돼 있다. 이들을 꺾기 위한 신예들의 집중 공략도 4대 천왕으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스타리그 본선 무대에 진출한 선수들의 실력은 계속 상향 평준화돼 정석플레이보다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른 순간적인 판단이 바로 승패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백지장 한 장 차이의 승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패기와 도전의식을 앞세워 새로운 전략과 전술 다양하게 시험해본 후 경기에 나오고 신예들에게 무게가 쏠리는 한 원인이다.

차기 스타리그 챔피언은 패기와 도전을 앞세운 또 다른 신예의 차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원숙한 기량의 4대 천왕이 신예의 패기를 잠재우고 천왕의 권위를 높일 것인가 벌써부터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임동식기자 임동식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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