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과학기술분야의 핵심 연구개발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그동안 시뮬레이션기법을 주로 실험가상화도구로 활용해왔다. 10번 할 실험의 7∼8회를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해 연구비용을 절감하고 개발프로세스를 단축하는데 이용했던 것.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단순 가상화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설계·검증·상용화 등 연구개발 전영역으로 그 쓰임새를 넓히고 있다.
채종서 원자력의학원 가속기연구팀장은 “사이클로트론(양성자가속기)에서 발사되는 1000만전자볼트(10MeV)급 양성자 빔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표적장치에 세계 처음으로 ‘이중 격자(Double Grid)’구조를 채택하는데 확신을 준 것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였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팀은 최근 첨단 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PET)에 쓰이는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이중 격자 표적장치를 개발, 세계 시장을 독식할 태세다. 이 연구성과의 핵심인 이중 격자구조는 기존의 사이클로트론 표적장치의 개념을 깬 성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고영희 박사팀은 아예 질환 관련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바탕으로 치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물질을 컴퓨터로 설계한 후 실제로 합성, 경구용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를 위한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해냈다.
고영희 박사는 “먼저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한 후에 컴퓨터를 이용해 다시 설계하고 합성하는 과정을 거쳤다”며 “생명공학기술과 정보기술 융합의 개가”라고 강조했다.
바이오벤처기업 크로스탈지노믹스도 비만치료 신약(후보물질) 설계과정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적용, 보통 5년 이상 소요되는 연구기간을 2년6개월로 단축했다. 이 회사는 신약개발의 핵심과정인 단백질의 3차원 입체구조를 규명하기 위한 포항방사광가속기 사용과정에서 컴퓨팅 설계의 지원사격을 받았다.
연구책임자인 노성구 박사는 “컴퓨터의 연구설계능력이 좋아졌기 때문에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기계연구원 구조연구부의 최병익 박사팀은 자동차 소음·진동·충돌 성능을 크게 향상시키고 완성차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는 ‘프런트 서브프레임 모듈(front subframe module)’을 개발하면서 아예 자체적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솔루션을 만들어 적용했다.
최병익 박사는 “자동차 충돌과 같은 기존 실증실험 3∼4번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1번으로 줄여 연구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며 “이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모듈의 충돌·진동·피로강도 등에 대한 가상 데이터를 축적한 후 실증실험을 통해 확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원자력 안전 지킴이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열수력안전연구부는 지난 6월 ‘원자로 열수력 분석 소프트웨어(시뮬레이터)’를 개발, 고리·영광·울진의 5개 원자로의 주기적 안정성 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원전의 실제 운전환경과 비상운전절차 등에 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삼아 최적의 운전환경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원자력 안전분야에 광범위하게 활용될 예정이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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