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강국을 건설하자]나노코리아를 이끄는 사람들(7)오성근 한양대 교수

사진; 나노 실버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중인 오성근 교수가 나노 입자 제조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난(蘭).

은은한 자태와 향기로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화초이다. 그러나 그만큼 예민한 화초이기도 하다. 특히 농약에 약해 여름철엔 각종 질병과 해충에 그대로 노출돼 가꾸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방법은 없을까? 은(銀)을 나노 크기 입자로 만들어 물에 분산시켜 난에 뿌려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은은 항균·살균 작용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농약과 같은 인공 화학 성분을 포함하지 않아 난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 나노를 응용할 수 있는 범위는 상상 이상으로 넓다. 오성근 한양대학교 응용화학공학부 교수(43)는 은 나노의 이러한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탐구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다.

“은 나노의 활용 범위는 생활과 산업 전반에 걸쳐 무한하며 인체에 유익하고 친환경적입니다”

오교수는 은 나노 연구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오교수가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나노 크기의 은 입자를 제조, 대량 생산하고 이를 생활과 산업에 접목하는 기술.

은 나노는 항균·살균 작용이 있어 일상 생활의 거의 전 분야에 응용 가능할뿐 아니라 전기적 특성도 우수해 산업용으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한한 가능성이 오교수의 연구자로서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고 있다.

현재 은 나노는 특유의 항균·살균 작용을 바탕으로 가전 제품이나 일상 생활 용품 등에 점점 그 쓰임새가 늘고 있다. 냉장고나 에어콘에 은 나노가 쓰이면 냄새를 없애주고 해로운 균의 번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의류에도 은 나노를 사용, 냄새나 곰팡이·잡균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부엌이나 욕실의 각종 생활 용품을 제조할 때 은 나노를 첨가하면 훨씬 위생적인 생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오교수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벤처 기업 ‘나노바이오’는 이미 은나노 기술을 이용한 도마·칫솔걸이·수저통 등의 생활 용품들을 시장에 선보였다. 또 국내 주요 전자 업체들과 연구소에 은 나노 입자를 공급하고 있다. 페인트나 아기 용품 업체, 생수통 업체들도 주 거래처이다.

오교수는 “은 나노 입자의 제조 및 대량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뿐 아니라 이를 상업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은 나노의 효과는 전부터 널리 알려져 왔지만 이를 대량 생산하고 산업적으로 응용하는 연구는 아직 미진한 상태다.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은의 특징은 △항균·살균 기능 △전기전도성 △촉매 효과 등이다. 항균·살균 기능은 각종 생활 용품에 응용할 수 있고 전기전도성 특성은 전자파차폐, 전자부품용 실버와이어 제조 등에 응용될 수 있다.

문제는 가격과 은 나노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 및 은 나노를 활용할 수 있는 응용 기술의 개발이다. 은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가격 문제 등으로 현실성이 없지만 이를 나노 크기의 입자로 만들면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어 산업화 전망이 밝다. 그러나 아직 전체적 사용량이 적은 만큼 가격을 떨어뜨리기가 힘들다. 대량 생산 기술도 학계 및 산업계에서 고민하는 부분이다.

오교수도 물론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은 나노 입자를 만들고 이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또 입자를 용액에 분산시키는 분산 기술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오교수는 현재 대외적으로는 생활 용품에 은 나노 기술을 접목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전자 산업·의료·환경 분야 등으로 은 나노의 활용 범위를 넓히기 위한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우선 오교수는 미세 전자 부품에 은 나노를 활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 굵기를 가진 미세 은 와이어를 제조, 이를 코팅액에 분산해 TV모니터 등에 코팅하면 전자파차폐제 기능을 할 수 있으며 디스플레이용 전도성필름이나 투명필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또 탄소나노튜브와 유사한 금속 나노튜브를 만들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는 전계방출디스플레이(FED)나 연료전지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오교수는 “금속 나노튜브는 전기적 특성 등이 우수해 보다 나은 FED를 만들 수 있으며 튜브 안에 수소 연료를 저장할 수 있어 연료전지 등에도 응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은 나노 입자를 물에 녹여 농약 대신 사용하는 친환경 제품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인체에 유해한 화학 성분을 쓰지 않고 항균·살충 작용을 할 수 있어 무분별한 농약 살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과일·야채 재배 및 골프장 잔디 관리 등에 사용될 수 있다.

그는 장기 과제로 나노 입자에 효소를 가미, 나노 입자가 신체를 이동하면서 질병을 치료하거나 진단하는 등의 생물학적 기능을 부여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오교수는 대학원에서 콜로이드 분야를 전공한 것을 시작으로 줄곧 입자와 용매 관련 연구에 매진해 왔다. 나노 입자에 대한 오교수의 관심은 이러한 전공 분야에 대한 연구에서 자연스럽게 가지를 치고 확장된 것이라 더욱 뿌리가 깊은 듯 하다. 그는 한양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을 거쳐 미국 플로리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어 이론과 실제를 겸비했다는 평가다.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한국의 과학기술계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교수는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공학계의 선배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젊은이들이 반드시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 낙관론자이기도 하다. 새로운 과제에 대한 연구와 산업화 노력이 즐겁고 큰아들의 공대 선택에 행복을 느낀다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열혈 공학도’였다.

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

◆분말 기술을 이끄는 사람들

 나노 입자 기술은 나노 분야의 대표적 연구 분야의 하나로서 국내외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화학·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나노 입자를 이용한 소재·전자기술·건강·의학·환경 등의 분야를 탐구하고 있다.

현택환 서울대 응용화학부 교수는 세라믹 나노 입자 분야의 연구자로 지난해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성영은 교수와 공동으로 연료전지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나노 탄소소재를 개발한 바 있다. 그가 개발한 탄소 나노코일은 백금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연료전지의 상용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현교수는 나노탄소 제조 연구결과를 세계적인 논문집에 20편 이상 발표한 나노분야 전문가이다.

그의 제자인 한상진씨도 탄소 소재 분야 연구로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와 HP가 수상하는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나노재료연구센터 이해원 박사는 고기능성 나노분말 연구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질화티타늄으로 만든 초경합금 나노분말로 수소 저장합금을 개발한 바 있다. 이박사는 나노입자의 특성을 이용, 내열성이 강한 열 관련 부품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요업기술원 박선민 박사는 세라믹 나노분말 분야의 연구자로 금속 콜로이드 및 원적외선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박박사는 원적외선과 음이온 방사를 통해 건강에 도움을 주는 세라믹 분말 개발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

김종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분자 전자학 소자와 소재, 약물전달 시스템, 콜로이드와 계면공학, 분자열역학 등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자이다. 그는 나노 입자와 초박막 생체 필름을 활용, 정보와 에너지를 전달하는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김교수는 이를 바이오센서나 생체 인식 등에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나노 입자 기술의 제조 능력은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떨이지지는 않으나 이를 응용하는 기술은 아직 뒤쳐져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경우, 대기업은 물론 특정 물질에 특화된 단단한 전문 중소기업이 많은 것이 나노 분야 경쟁력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또 전문가들은 나노 입자 기술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응용 연구를 통해 나노 기술의 사용처를 적극적으로 넓히는 것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