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소재가 경쟁력이다]대기업들 "日 게섰거라"

 국내 대기업들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던 전자재료·소재 분야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핵심 재료소재의 해외 의존이 계속돼선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한데다 국내 반도체·LCD·휴대폰 산업 등이 세계 최대 수준으로 도약하면서 전자소재 분야 진출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든든한 시장을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D램, TFT-LCD 등을 중심으로 전방 산업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핵심 소재 부품을 수입에 의존해 무역 역조는 커지고 있다. 2002년의 경우 IT산업 관련 수입액 296억달러 중 76.7%에 달하는 227억달러를 부품수입에 지불해야 했으며 수출이 늘수록 대일 무역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연구개발 기간과 투자가 요구되는 소재 산업 특성상 단기간에 1류 기업들을 육성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대기업들의 전자소재 시장 진출은 한국 소재산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특히 국내 대기업들은 완성품에서 기초 소재까지 수직적 계열을 형성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초기 규모의 경제 달성과 경영 효율화에도 유리하다는 평가다.

삼성 계열의 제일모직·삼성코닝정밀유리·삼성정밀화학, LG 계열의 LG화학·LG마이크론·LG실트론, SK의 SKC 등이 대기업 그룹 계열의 대표적인 전자재료 업체들이다. 코오롱, 한화종합화학, 두산 등은 화학 및 섬유 분야에서

쌓은 탄탄한 저력을 바탕으로 전자재료 사업으로 영역을 다각화한 경우이다.

이들 기업들은 그동안 주로 일본 업체들이 장악해 왔던 전자소재 분야에 도전, 국산화를 통해 외국 기업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과 동등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소재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일본 기업은 독점적 소재 기술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 나라에 저급 제품을 고가에 팔고 우리 기업들이 추격하면 가격 인하 공세를 펼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며 “국내 완성품 업체들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저력을 가진 소재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이런 구도가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이런 싸움을 중견·중소기업들이 힘들게 해 왔다면 이제 보다 힘을 가진 대기업들도 전면에 나서는 형국인 것이다.

LG화학의 경우 2차전지·TFT-LCD용 편광판·PDP용 형광체 등의 소재를 자체 개발, 국내 소재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충북 오창에 2차전지, 편광판 등을 생산하는 ‘오창테크노파크’를 준공, 세계적 전자소재 업체로 성장하는 전기를 마련했으며 3000㎃/h급 2차전지의 개발에 나서는 등 세계 정상급의 소재 업체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다.

제일모직도 CMP슬러리, EMS(전자파 차폐재), 2차전지 전해액 등의 전자재료를 생산하고 있으며 디스플레이 재료인 컬러레지스트·도광판·이방성도전필름 등도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삼성정밀화학도 전자재료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LG전자, 삼성전자, 삼성SDI 등 같은 계열의 세트 업체들과 긴밀한 공조 속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 수준의 업체들과 협력, 그들의 엄격한 품질 기준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며 자연스레 경쟁력을 높이는 셈이다. 안정적 시장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 이는 도약 단계인 한국 전자재료 산업에 플러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장점은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수직 관계를 통해 특정 업체로 거래선이 쏠리면 초기에는 시장 확대 효과가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한 후엔 매출 확대를 가로막는 벽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일본 기업 투자 유치가 본격화되고 한일 FTA가 현실화될 경우 일본의 강력한 기술력 앞에 속절없이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본 부품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한국 소재 업체들은 힘겨운 경쟁을 치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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