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슈퍼컴퓨터 전쟁이 다시 뜨겁게 불붙고 있다.
비지니스위크 최신호는 2년전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를 내놓은데 큰 충격을 받은 미국정부가 자존심을 걸고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선두를 되찾기 위한 프로젝트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테네시주(州) 오크 리지 국립연구소(ORNL)에 초당 50조회(50테라플롭스)의 연산속도를 갖는 슈퍼컴퓨터를 관민 공동으로 설치하기로 했다. 초기 2년간 5000만달러의 정부자금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에는 IBM, 크레이, SGI 3사가 참여하는데 연구소측은 오는 2007년까지 연산속도를 무려 350테라플롭스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내로라는 슈퍼컴 제조사들이 함께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의 목표는 단 하나. 일본 NEC가 지난 2002년 개발한 슈퍼컴 어스시뮬레이터의 연산속도(41테라플롭스)를 앞지르는 것이다. 어스시뮬레이터는 당시 ‘세계 슈퍼컴퓨터 톱 500’ 상위랭킹에 든 미제 슈퍼컴퓨터 20대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연산속도를 발휘했고 미국 과학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어스시뮬레이터는 특수제작한 고성능 프로세서로 구동되는 벡터방식이기 때문에 여러 개의 상용 CPU를 연결한 스칼라(클러스터)방식을 채택한 미제 슈퍼컴퓨터보다 외견상 드러나는 스펙 이상의 성능차이를 나타냈던 것이다.
이같은 컴퓨터성능의 격차는 곧바로 생명공학, 화학, 물리학 등 첨단과학연구와 자동차, 우주항공 같은 산업분야의 경쟁력 차이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약업계에서 수천종이 넘는 단백질의 약물반응을 시뮬레이션할 때 매 3분마다 분석하는 연구소와 한나절 이상이 걸리는 연구소는 애당초 경쟁이 안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제 자동차가 미국산 자동차보다 더 조용한 것도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바람소리를 줄이는 공기역학 시뮬레이션에서 일본이 더 앞서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상태로 가면 미국의 과학자들은 일본에 비해 10∼100배에 달하는 슈퍼컴퓨팅분야의 열세를 떠안고 연구프로젝트를 해야할 판이다. 미국은 지난 75년 크레이 1기종을 개발한 이래 슈퍼컴퓨터의 종주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슈퍼컴퓨터를 주로 핵개발, 우주항공 등 군사용에 치중했고 민간기술이나 과학연구용도로 개발은 소홀했다. 또 미국 슈퍼컴퓨터 업체들은 90년대 이후 성능보다 가격면에서 유리한 스칼라방식의 제품개발에 치중했고 결국 이것이 얕보던 일본에 덜미를 잡힌 이유가 됐다. 이같은 반성에서 미국은 최근 IBM에 슈퍼컴퓨터 위탁 개발명목으로 약 3억달러의 정부자금을 출연하고 관련예산도 대폭 증액하는 등 타도일본을 목표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선두유지를 위한 일본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5000억엔을 들여 개발한 어스시뮬레이터 이후 예산부족으로 이렇다할 후속계획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3일 동경대학교는 오는 2008년까지 무려 초당 2000조(2페타플롭스)의 연산속도를 지닌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슈퍼컴퓨터시장은 연간 10억달러 규모에 불과하지만 과학기술과 첨단산업분야에 큰 파급효과를 갖고 있어 미국과 일본의 슈퍼컴퓨터 전쟁은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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