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들은 게임몰입의 심리적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까. 온라인게임 이용자 행태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중독 집단들이 비중독 집단에 비해 힘이나 권위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갖고 있다”면서 “현실에서 잦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하는 욕구를 게임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교수팀은 지난해 온라인게임 리니지 사용자 4816명을 대상으로 게이머들의 구체적인 심리적 욕구와 충족과정을 탐색한 결과, 게이머들의 심리적인 욕구가 게임이라는 경험을 통해 보상을 받음으로써 게임에 몰두하도록 조건화된다고 설명했다. 심리학자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형성이론, 즉 ‘사람들은 보상을 받는 행위를 더 많이 한다’는 이론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또 온라인게임의 몰입정도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기 위해 사용자 집단을 과도한 몰입집단, 잠재적 몰입집단, 비몰입 진단 등 3가지로 나누고 자기표현욕구, 인간관계욕구 등을 분석했다.
몰입수준이 높을수록 온라인게임에서 아이템 등 물질능력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온라인게임에서 레벨업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과도한 몰입 집단의 경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자체보다 레벨업을 통해 게임내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반면,몰입수준이 낮을수록 게임 자체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레벨업을 한다는 응답비율이 높았다.
또 게임개발사가 자신의 아이템 가치를 떨어뜨리는 패치를 할 경우, 과도한 몰입집단이 자신이 소유한 아이템의 가치하락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 교수는 “온라인게임 사용자들이 아이템에 집착하는 행동도 현실세계 명품 신드롬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현실세계에서도 명품 소비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현상이 사이버세계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게임 중독자들이 게임 내에서 보이는 강한 성취동기를 현실활동으로 전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육적 시사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내용을 설명하면서 “국내 게임시장이 올해 4조 5000억원 규모로 급성장하면서 게임의 사회적,심리적 영향에 대한 학계연구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며 “학계의 체계적인 연구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사나 게임관련 교육정책, 각종 산업정책을 위한 기초자료가 되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지만 사회적관심이 아직 적고 연구환경도 미비해 본격적인 연구가 실시되고 있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심리학적 설명은 외국 연구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시각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심리학자 슐러는 게임을 통해서 현실에서 만족시키지 못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게임에 몰입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그린필드 등은 게임중독이 자존심이 낮거자 자신의 정체감에 불만있는 개인의 특수한 심리학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수한 심리적 특성은 외부대상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중독에 빠질 상관성도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게임에 대해 사용자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호연심리상담센터 이형초 소장은 지난 1월부터 한달간 청소년 1065명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다수의 응답자(66.6%)가 자신의 생활에 도움도 피해도 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또 피해를 준다고 답한 사람과 도움을 준다는 사람이 각각 15.7%, 17.5%로 비율이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결과는 성인 1036명을 대상으로 한 결과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앞으로 게임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성인 응답자와 다소 차이를 보였다. 청소년의 56.9%가 게임사용을 줄일 것이라고 응답했으나, 성인의 경우 56.9%가 지금과 같이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당장 그만둘 예정이라는 비율도 청소년은 7.6%, 성인은 1.2%로 큰 차이를 보였다.
게임할 때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조사도 진행됐다. 청소년의 경우 혼자하는 경우가 43.6%로 가장 높고 친구와 함께하는 경우가 40.5%, 형제,자매와 하는 경우는 14.3%로 나타났다. 부모와 함께한다는 경우는 0.1% 미만으로 극히 낮았다.(표참조) 이형초 소장은 "외국 사례에서는 학부모의 역할이 매우 크다”면서 “국내의 경우 온라인게임에 대해 모르는 학부모가 무조건 감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게임업체 스스로 각종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사후 관리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가별 사회환경이 게임유저 성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대 경영학과 위정현 교수는 온라인게임 시장을 위해 한·중·일 유저 성향을 비교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온라인게임에서 다른 사용자의 캐릭터를 죽이는 이른바 ‘플레이어킬링(PK)’의 빈도가 중국이 가장 높고 한국이 중간, 일본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위 교수는 “온라인게임 시장 및 사용자 분석을 하다보면 중국인들이 영웅과 지존에 대한 집착도가 가장 높고 게임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이러한 경향 차이는 그 사회의 소득수준과 문화환경과 밀접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터뷰-한국게임산업개발원 김민규 산업정책팀장
“게임산업 역사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년이 채 안될 겁니다. 역사는 짧아도 다른 문화산업과 비교해서 영향력은 대단하죠. 그러나 역사가 짧은 만큼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연구가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산업정책팀을 이끌고 있는 김민규 팀장은 높아진 게임산업의 위상에 비해 학문적 연구는 상당히 미흡하다고 운을 뗐다. 영화와 비교해보면 산업적 성장도 놀라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면서 영화의 위상의 사회적으로 높아지는 선순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더욱 부러운 점이라고 말했다. 게임에 대한 연구는 게임중독에만 집중돼 있고 게임의 부정적 효과는 물론 긍정적 효과를 함께 이론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연구활동은 전무한 편이다.
“게임 분야의 연구가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급성장했기 때문에 숨을 고를 틈이 없었겠지요. 중요한 연구주제로 제기되지도 않고, 또 연구할 수 있는 인력이나 지원도 극히 드뭅니다. 연구원들이 게임을 주제로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곳도 없습니다. 게임업체들이 이러한 사회적 필요성에 대해 눈을 감는 경우도 많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내실은 미숙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지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강원랜드나 과천경마장의 일부 매출을 사회적 영향과 중독 문제, 교육적 효과 연구에 쓰여지는 것처럼 비슷한 의무조항을 온라인게임 업체에 도입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온라인게임연구센터와 같은 연구소 설립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 팀장은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연구 분야는 가상현실과 이에 따른 법체계, 디지털 저작권 등 매우 다양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미디어 분야에서 연구하는 ‘상호작용성’을 온라인게임 분야에 적용해 연구할 수도 있다. 게임은 가장 첨단적인 미디어로 꼽히고 우리나라만큼 IT인프라를 갖춰진 나라도 없기 때문에 게임의 상호작용성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가 학문적으로 선점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에서는 게임의 교육적 효과와 활용에 대한 연구를 위해 약 8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구요. 게임이 향후 미래 인류의 삶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할 것인가를 위한 매우 적극적인 학문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기획팀>
팀장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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