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이 국내 휴대폰업계의 구매주문(PO)대로 베이스밴드 칩을 공급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퀄컴의 공급계약 위반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국내 업체들은 퀄컴으로부터 제때에 베이스밴드 칩을 공급받지 못하고도, 유일의 CDMA 칩 벤더인 퀄컴의 눈밖에 나 칩 공급을 차단당할까봐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기업 대 기업 관계에서는 독점 벤더인 퀄컴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에 정부나 업계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뒤바뀐 ‘갑’과 ‘을’=퀄컴은 기업설명회(IR)때마다 “재고가 없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재고가 없으면 기업 경영의 리스크가 크게 줄어들어 기업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내 업체들은 칩 구득난을 하소연한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퀄컴으로부터 주문량의 70∼80% 밖에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휴대폰업계는 이같은 현상을 놓고 “퀄컴의 고객서비스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불만을 높이고 있다. 국내 한 메이저업체의 구매관계자는 “퀄컴에 주문을 낼 때는 갑(휴대폰업체)과 을(부품업체)이 완전히 뒤바뀐다”며 “퀄컴과의 계약에는 납기에 대한 개런티가 전혀 없다”고 억울해 했다. 퀄컴이 칩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더라도 국내 휴대폰업체들은 이에 따른 불이익을 그대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중견업체 한 관계자는 “퀄컴은 10년 동안 로열티 조정 한 번 없고, PO대로 제대로 공급도 안하면서, ‘한국을 최혜국, 국내 휴대폰업체들을 파트너’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수요예측 퀄컴 맘대로=퀄컴의 고도의 수급전략에 손해를 보는 것은 국내 휴대폰업체다. 휴대폰업체 구매 담당자들은 퀄컴과 친밀도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최근 2∼3년간 CDMA 휴대폰 시장이 20∼25% 가량 성장하면서 국내 업체들은 칩 구득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업체들이 CDMA 휴대폰 시장 성장을 예상해 주문을 내도 퀄컴은 ‘그들만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휴대폰업계가 5000만개의 칩을 주문해도, 퀄컴의 수요 예측에서 4000만개라고 결정이 나면 국내 업체들의 의견은 그대로 묵살된다”고 말했다.
국내 간판 휴대폰업체이자 퀄컴과의 협상에서 가장 유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퀄컴의 cdma2000 1x EVDO 칩 수급 차질로 국내 제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언급조차 회피하고 있다. 퀄컴과 문제를 일으켜 도움이 될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000만대의 CDMA 휴대폰을 공급한 퀄컴 실적개선의 일등 공신이다. 하물며 나머지 업체들은 80%만 공급받아도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공동 대응방안 마련해야=이같은 상황에서 개별 휴대폰업체가 퀄컴 상대로 수급 문제를 문제삼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나 다름없다. 업계에서는 협의체나 정부 차원의 대응책이 절실하다는 반응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무선인터넷 표준을 위피로 결정하자 브루의 퀄컴이 미국 정부까지 동원해 압력을 가하는 것처럼 국내 휴대폰업체도 정부를 중심으로 뭉쳐서 퀄컴과의 불공정하거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퀄컴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업계가 공동출자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차원에서 퀄컴에 대항할 베이스밴드 칩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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