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지사 같지 않은 기업. 성과위주보다는 연공서열 문화가 존재하는 곳. 한국후지쯔에 대한 대내외적 평가다. 한국후지쯔 610여명의 직원 중 25년 이상 근무를 한 ‘왕고’들이 25여명이 된다는 점도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
김병원 한국후지쯔 마케팅본부장(51) 역시 지난 80년, 첫 직장으로 한국후지쯔를 만났으니 머지 않아 이 ‘왕고 대열’에 합류할 상황이다. 젊은 시절 변신을 꿈꾼 적이 없냐는 질문에 “오래 근무한 게 자랑인가요. 불러주는 데 없어 그냥 있다보니 예까지 온거지요.” 김 이사 특유의 실눈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전산학과가 있던 대학이 손 꼽힐 정도였던 그 당시, 김 이사 역시 취업 이후 IT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 배치 받은 부서는 소프트웨어연구개발본부. 물론 김 이사가 직접 지원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김 이사는 ‘적성검사’로 치러진 입사시험부터 난감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짜피 해야하는 일이라면 제대로 밟아가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공교롭게 본부에서는 한글처리체계를 위한 소프트웨어 알로리듬 개발 프로젝트를 막 시작하던 때였으니 김 이사 말 처럼 ‘운’도 따랐다.
7년 정도를 개발에서 구르자 김 이사에게 두번째 찾아온 기회는 상품기획. 본사에 있는 무수한 제품 중 국내 시장에 들여와 사업화할 만한 아이템을 발굴하고, 가격을 책정하는 일. 이 업무는 97년 회사 내 마케팅본부가 정식으로 만들어진 후에도 계속됐으니 그야말로 한국후지쯔 개념의 ‘마케팅 통’으로 김 이사가 성장한 첫 발이었던 셈이다.
김 이사는 후지쯔의 저력을 얘기할 때 늘 거론하는 경험담이 있다. 초창기 유닉스 서버를 공급할 때 일이다. 제품이 초기라 안정성에서 문제가 종종 발생했는데, 당시 제품 소싱을 담당했던 김 이사는 ‘미친척’ 본사에 리콜(무상교환)을 요청했다는 것.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밑져야 본전 이라는 심사로 한번 던진 건데, 본사가 그걸 수용할 줄 생각이나 했나요.” 유지보수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본사가 별 문제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애정을 가져볼 만 한’ 직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20년 가까운 마케팅 베테랑 김 이사는 그러나 냉정하다.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한국후지쯔에 대해 “지금까지 회사의 영업이나 마케팅 방책은 찾아오는 고객을 기다렸다”며 “이제는 우리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마케팅 역시 고객이 뭘 원하는 지 찾아내 제안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방향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또 본인을 포함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경제법칙이 회사 내 뿌리내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밑에 있던 직원이 다른 부서에 가서 누구 밑에서 일 배웠는 지 잘 배웠다는 얘기를 듣는 게 좋다”는 김 이사에게서 한국후지쯔 30년 마케팅을 책임져온 근성을 발견하게 된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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