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전자상가에서 5년째 컴퓨터 부품 판매업을 하는 K사장은 요즘처럼 장사하기가 힘들게 느껴진 때가 없다고 했다. 예전에는 단체 납품건을 잡아 제법 많은 돈을 만져보기도 했다. 요즘에는 경쟁이 심해 예전 같은 횡재수는 찾아 볼 수 없다. 전부터 거래하던 회사의 PC를 유지보수하며 근근히 살아간다. 용산에서 거래되는 부품의 단가는 인터넷을 통해 100원 단위까지 알려졌다. K 사장 역시 울며 겨자먹기로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에 판매한다. 하지만 전자상가의 많은 매장 중 하나인 K사장의 가게 역시 단골이 아니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 가게가 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규모가 수조원을 넘어서면서 용산전자상가의 거래 형태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가격비교사이트의 활성화는 컴퓨터와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용산 상인에게 재앙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점포마다 조금씩 다른 가격과 동네 전파상보다 월등히 싼 가격으로 명성을 유지해 온 용산이 이제 10분만 투자하면 가장 싼 곳을 확인할 수 있고 직접 방문할 필요도 없이 물건을 배달해주는 인터넷쇼핑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시대는 변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용산전자상가가 제공하는 물품판매 기능에 만족하지 않는다. 용산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인터넷쇼핑몰의 제품이 다르지 않고, 동네 할인점에 비해 다양하지도 못하며 가격 경쟁력도 떨어진다.
용산전자상가의 탈출구는 결국, ‘무엇을 팔 것인가’와 ‘어떻게 팔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는 시각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상인의 논리가 아닌 소비자의 논리로 문제를 바라봐야 해결점도 나온다.
소비자는 당연히 더 싼 가격에 구매할 권리가 있다. 또 더 좋은 서비스를 요구할 권리도 있다. 바쁜 소비자들은 구매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인터넷을 통한 가격 공시는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가격은 문제를 푸는 변수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소비자들이 무엇을 바라며 용산을 찾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양하고 많은 제품, 좁은 통로를 다니면서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구경거리, 실제로 물건을 만져보고 주인과 얘기하며 흥정하고, 의견도 들어보는 등의 체험은 인터넷쇼핑몰과 대형 할인점에서는 줄 수 없는 것들이다.
용산을 찾는다는 것이 소비자에게 있어 이벤트고 간만의 나들이가 될 때, 또 용산이 쇼핑의 즐거움을 소비자에게 선사할 수 있을 때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문화 형태의 구매 패턴을 제공하고, 곳곳에 정보센터를 개설하며, 상인들은 밝은 얼굴로 성가신 질문에도 친절히 답하는 등 보다 인간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
<하일호 변호사 kan@hih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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