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한ㆍ일 FTA 교섭과 부품산업의 미래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완성품·부품 무역수지

 ‘국산 부품·소재 기피하나.’

 지난 20일 한·일 정상간 방콕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교섭을 연내 시행키로 합의함에 따라 부품·소재산업의 미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비록 부품·소재 산업 중요성에 대해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FTA가 체결될 경우 중소 부품·소재 산업계측은 불리한 반면 대기업을 비롯한 완성품 산업계측은 유리해 서로의 이해 관계가 엇갈린다. 부품·소재 산업계측은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 세트업체들조차도 국산부품 사용을 기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특히 이들은 정보·전자 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해 신개발품 채택·공동개발 활성화 등 참여 기회를 보장해달라는 요구다.

 반면 완성품 업체는 국산부품을 기피하는 게 아니라 기술력·가격경쟁력 등에서 열세이기 때문에 채택이 안된다고 반박한다. 이들은 부품업체들이 기피를 주장하기보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강화하는게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윈윈(win-win)전략 펼쳐라 = 무선통신기기 등 우리 주력 상품의 수출이 증가할수록 핵심 부품 수입 의존도가 함께 늘어나는 등 대일 무역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9월까지 대일본 무역적자는 136억3800만달러로 지난해 147억1300만달러의 92.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현상은 핵심 부품 및 제조기기의 대일의존도가 높은 것은 물론 소재등 핵심 중간재의 대부분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의지대로 2005년께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정이 체결될 경우 이같은 산업구조는 더욱 고착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부품·소재 업체는 기술력·신뢰성 부재 탓만 하지말고 ‘완성품 업체와 협력 업체간 윈윈 전략’을 시급히 재정립, 국산 부품 구매를 장려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대다수 부품·소재 업체들은 주요 완성품 업체들이 국내 순수 기술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일본 처럼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보다 활성화함으로써 중소 업체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등 가격경쟁력을 갖추게끔 지원해줄 것을 적극 주문한다.

 또 양측이 이를 통해 신개념의 제품 개발 내지는 양산과정에서 문제점을 피드백해 서로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조속히 대응해 기술을 한층 고도화할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중소 부품·소재 업체측은 요구한다.

 부품 업체의 한 관계자는 “부품·소재 국산화 개발 기간 단축을 위해 도면·규격 등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양산과정에 달하기까지 2∼3회 기회를 더 부여하고 평가 완료품에 대한 경제적 물량을 약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례로 중간 소재 업체인 H사의 한 사장은 대기업인 S사와 공동으로 소재 개발에 나섰다가 낭패를 봤다. 1년간 직원을 대기업 사업장에 상주해 중간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나 양산 지연과 신뢰성을 이유로 들어 일본산을 수입, 사용키로 한 것.

 H사 사장은 “개발 제품의 양산화를 위해 밤세워 노력하고 있던 차에 S사측이 통보한 것도 아니고 간접적인 인맥을 통해 뒤늦게 교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허탈한 심정일 뿐”이라고 전했다.

 중소 업체인 A사도 최근 일본에 전량 수입해오던 이동통신 핵심 부품을 국산화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후발 업체로 뒤늦게 참여하고 일본 업체에 비해 마케팅 능력이 뒤지다 보디 주문량을 일본에 빼앗겨 다른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품·소재 경쟁력 갖춰라=전자산업진흥회에 따르면 국산 부품 채택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올해 삼성·LG·대우 등 메이저 업체의 국산 부품 구매 비율은 금액 통관 기준으로 59.7%로 조사돼 전년 대비 9.5%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디오·PC·CD롬 등 일부 제품만이 줄어들었을 뿐 휴대폰등 주요 제품의 국산 구매비율은 적게 1.1%∼36.8%포인트 가량 전년 대비 증가했다.  완성품 업체들은 이를 근거로 일부 핵심 부품·소재를 제외하곤 국산품 구매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대우일렉트로닉스 구매담당 한 관계자는 “단지 영상부품·RF부품 등 기술력과 신뢰성을 요하는 제품의 경우 국산품을 믿을 수 없어 비싼 가격을 주고서 일본에서 수입, 만성적인 대일 무역 역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중소업체들이 규모의 한계로 인력·자금 등 측면에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 기술력 부족으로 선진 제품을 카피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어 안정적인 경제 물량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 신개발품을 적극 채택할수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세트 제품의 경쟁력은 ‘코스트 다운’에 달려 있다”며 “일본 제품을 국산품으로 대체하면 원가를 절감하고 수급기간도 단축되는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본산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생산 라인에서 믿을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국산 부품·소재를 사용했다고 만의 하나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면 그 책임이 구매담당자 등 실무부서에 책임이 고스란히 돌아가기때문에 결국 기존 일본산 부품을 사용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핵심 기술에 대한 유출 우려로 중소 부품·소재 업체와 공동 개발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다고 못박고 있다. 대기업인 S사 구매전략기획팀 한 관계자는 “경쟁 업체의 기술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품 개발에 비계열인 부품·소재 업체가 깊숙이 관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제품 라이프 사이클이 점점 짧아지는 상황에서 부품 업체가 핵심 부품·소재 기술을 습득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무리이기때문에 중소업체들이 상용화 기간을 단축하지 않는 한 신개발품의 채택이 무리라고 완성품업체들은 지적한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 일본 부품산업의 경쟁력

 일본이 10년 이상의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제가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버팀목은 강력한 토대를 구축한 부품소재 산업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일본 부품소재 산업의 성공에는 소자 업체와 협력업체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있다는 것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전자재료 산업의 경쟁력은 전적으로 일본 전자산업의 강력한 시장 지배력에 기인하는 것으로 80년대 초까지도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던 일본 반도체 재료 분야는 일본 반도체 기업들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급성장했다. 특히 전자재료 사업은 일반적으로 관련 제품의 수명주기가 매우 짧아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다가도 순식간에 위축될 수 있는 데 일본 기업들은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신속히 대응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세계적인 부품·소재 업체들은 최근 세계적인 불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한국으로 잇따라 진출하는 기업도 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부품·소재산업을 여전히 10∼20%대의 고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전자제품이 고도화 될수록 부품·소재 분야도 고도화의 길을 함께 걸어 부가가치 높은 제품을 주력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닛산화학은 2005년까지 연구개발 인력을 100% 늘렸으며 지난해부터 반도체 재료 평가센터도 가동 중이다. 이 회사가 이렇게 공격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르네사스·도시바 등 일본 유력 반도체 업체들과 도쿄일렉트론 등 장비 업체, NEC·샤프·소니·산요 등 디스플레이 업체와의 협력을 첫 손에 꼽고 있다.

 불리한 시장에서는 업체간에 활발히 협력하고 유리한 경영 환경에서는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하는 것도 성공의 원인이다.

 세계 최대 웨이퍼 생산업체 신에츠는 일본·말레이시아·미국·유럽·대만 등이 생산 거점을 구축한 상태며 쇼와덴코도 중국 상하이에 이어 대만·싱가포르에 특수가스 공장을 설립한데 이어 최근에는 한국 진출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