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칼럼]기술 융합화 걸맞은 연구회 시스템 절실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영혁신을 통한 연구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선진국형 연구회시스템의 개편이 검토되고 있다. 연구회가 기획역량 부족, 지렛대 역할 결여, 중복성 연구영역 및 조직과 인력의 탄력적 조정 능력 부족, 국가 기술혁신 체제상의 연계 미흡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게 개편의 근거다.

 그러나 비판에 앞서 우리의 연구환경 변화에 대한 명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90년대 이후 대학이나 기업의 연구 역량이 상대적으로 확대, 산학연간 상호 협력 보다는 경쟁 관계로 발전했다. 특히 재정적인 지렛대 역할을 기대했던 PBS사업과 비목별 통제된 기관 고유사업의 이원적 구조로 인건비 부족 등 역기능을 초래했다.

 특히 21세기 과학기술 패러다임은 단위 기술에서 융합 기술로 바뀌는 추세다. 당연히 기술 개발의 주체인 조직과 인력도 유연성 있게 대처해야 함에도 출연연의 모습은 3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학제적으로 분류된 조직과 기존 예산 틀을 고수하고 있다. 자율과 책임이라는 위임형 경영철학의 유럽식 연구회 체제를 벤치마킹했다지만 핵심이 빠졌다.

 현재 우리 R&D 투자의 기본 방향은 선택과 집중을 표방하면서도 산학연의 불공정한 경쟁을 유발, 연구원들의 사기만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연구원들에게 사명감만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시장경제 이론식 경쟁적 목표 관리만으로 초일류 기술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과학기술 개발의 속성은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통해서만 창의적 기술혁신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연구회 체제는 우리보다 늦었지만 과거의 폐쇄적인 종적 연구체제를 청산하고 유럽식 연구회 체제의 특징인 횡적 단일법인 체제로 개편, 침체된 연구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과학기술의 키워드는 ‘융합’이다. 과학기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화적 단계를 뛰어넘는 변화를 꽤하고 있다.

 공상과학 만화에서나 보아왔던 이야기들이 반세기도 안돼 현실화되고 있다. IT, BT, NT 등 이종기술이 중첩되는 융합기술은 과학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다. 과거의 학제적인 구분에서 다학제적(interdiciplinary)으로 기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 출연연이 안고 있는 기관간의 높은 장벽, 인력의 중복성 및 경직성, 시설장비의 중복투자, 노사간의 갈등 등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경쟁만을 강조하는 효율성 보다는 경쟁과 안정이 조화된 효과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돼야한다.

 단순 기관 통폐합이나 인력 감축과 같은 물리적 처방보다는 조직의 융합과 핵분열이 자율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선진국처럼 출연연과 연구회의 법인격을 단일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시점이란 생각이다. 과학기술의 공공적 국가 목표와 연구원 개개인 목표의 두 수레바퀴가 균형과 조화를 이뤄갈 수 있도록 R&D 환경도 따라서 변화돼야 한다.

◆양윤섭 산업기술연구회 사무국장 yys@koc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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