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면 플라스틱으로 정교하게 만든 나무들이 있다. 어떤 것들은 너무나 정교해서 직접 가까이 가서 손끝으로 잎을 만져보며 확인해 봐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플라스틱 트리’라는 제목은 진짜같은 인공 나무들이 자연의 순수한 나무를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모조품이 진품을 대신하고 거짓 사랑이 진실된 사랑을 압도하는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콘크리트 옥상에서도 나무가 자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장인물의 말처럼 과연 진정한 사랑은 어떤 모습인지 감독은 묻고 있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가장 지옥같은 사랑의 형태는 삼각관계라고 ‘백치’에서 말하고 있다. ‘플라스틱 트리’는 평화로운 연인들 앞에 새로운 남자가 등장하면서 만들어지는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삼각관계를 중심축으로 전개된다. 삼각관계가 긴장감을 발휘하려면 꼭지점에 있는 대상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양쪽 관계가 비등해야 한다. 그러나 ‘플라스틱 트리’에서는 그 균형이 깨져 있다. 따라서 ‘플라스틱 트리’는 서로가 팽팽한 세력으로 대치하는 삼각관계라기보다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구애 혹은 매달림으로 구성된 삼각관계다.
바닷가 작은 이발소에서 행복한 삶을 보내는(정확하게는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김인권 분)와 원영(조은숙 분) 커플 앞에 수의 어릴적 친구인 병호(김정현 분)가 등장한다. 병호는 수가 성불구자인 것을 알고 원영을 유혹하여 섹스를 한다. 원영은 병호와의 섹스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이제 그녀에게 수는 귀찮은 존재, 떼어버려야 할 무거운 짐에 불과하다. 병호는 수의 입장에서는 침입자이며 원영의 입장에서는 해방군이다. 세 사람의 욕망이 일치하지 않는데서 불화가 발생한다.
병호가 등장하기 전까지 원영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던 수와의 관계는 플라스틱 트리였을까. 진짜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만져 보고 확인해 보니까 거짓된 인공 나무인 것처럼. 그렇다면 병호에 대한 원영의 마음이 진정한 사랑일까. 그것은 어쩌면 결핍된 섹스를 충족시켜 주는 일시적 현상은 아닐까. 혹은 원영에 대한 수의 마음이 진정한 사랑일까. 아니면 그것은 편집증적인 집착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문제는 주류에서 일탈한 사랑의 형태가 아니라 그 질문의 방식이다. 도빌영화제와 몬트리올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기도 한 어일선 감독의 데뷔작 ‘플라스틱 트리’는 주제 자체가 전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비주류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관습적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제작비 전액을 해외 투자 자본만으로 충당해서 한국영화를 제작한 방식이라든가, 주제의 전복적 코드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새로움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플라스틱 트리’의 성적 코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성불구자(혹은 성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커플에 정상인이 끼어들면서 긴장감이 발생하는 이야기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넘쳐난다. 문제는 이야기의 방식이다. 어일선 감독은 이 낯익은 소재를 낯설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양념치고 버무려서 진수성찬을 차려야 했지만 진부한 상징과 관습적 방식을 답습하며 전복적 주제를 전복적으로 표현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플라스틱 트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자극적 소재나 주류에서 일탈한 전복적 가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내는 가공의 솜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재 자체의 선정성으로만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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