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의 편지](30)가부토초의 늑대

 지금까지의 줄거리: 아키라의 두번의 청부살인 가능성과 관련하여 카부토초의 늑대라는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에이지는 증권신문사에 오래 근무하였다는 요네쿠라라는 인물을 찾아가는데….

1999년 6월 30일

사이타마현 지치부시

 지치부(秩父)시는 도쿄를 북쪽에서 지붕같이 덮고 있는 사이타마(埼玉)현의 서쪽에 위치한 명승지다. 도쿄에 각종 물자를 공급하는 사이타마현 안에서도 에도시대에는 비단 그리고 근대에는 시멘트, 펄프 등을 대어 온 알짜 같은 고장인 것이다. 북으로는 부코산, 남으로는 아라카와(荒川)강에 둘러싸여 있는 지치부는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한시간 반을 가 내린 지치부역에서 택시운전수에게 요네쿠라의 집주소를 주자 마치 동네친척집에라도 가듯 익숙하게 달린다.

 “요네쿠라상을 아세요?” 에이지가 택시운전기사에게 묻는다.

 “네, 아마 작년에 이사오셨지요. 약주를 좋아하시고 책을 읽으시고 수시로 낚시를 하셔서 우리 기사들 사이에는 신선이라고 통합니다. 좋은 분이지요.”

 요네쿠라의 집은 울타리가 없는 이층집인데 뒤로는 강이 보인다.

 “고멩 구다사이(실례합니다)”라고 에이지가 외치자 뒤곁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여자 한명이 나오는데 60살은 넘어보인다. 그저 그렇게 생긴 얼굴인데 이마 한가운데 큰 사마귀가 있어 한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을 인상이다.

 “저…, 증권신문사의 소개로 요네쿠라상은 좀 뵈러 왔습니다만….”

 증권신문사라는 말은 듣더니 얼굴이 환해지며 웃는데 앞니 전체가 드러나 순간적으로 얼굴에 플래시가 지나가는 것 같다.

 “그이는 지금 아라카와강에서 아유낚시에 한창이에요. 저 뒷길로 쭉 나가시면 빨간색 모자를 쓰고 낚시를 하는 이가 보일 거에요. 물속에 들어가면 한 두어시간은 있는데 거의 나올 시간이 되었을 거에요.” 부인이 인물은 없어도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것 요네쿠라상이 좋아하시는 백년의 고독입니다”하고 술병을 내밀자 부인은 허리가 꺾어지게 절을 하며 받는다.

 집뒤로 돌아가니 탁 트이며 강이 보이는데 강까지의 거리가 거의 1㎞는 되어 보인다. 잡풀이 깔린 평지를 걸어가니 소리가 바뀌는 느낌이 든다. 차소리 등의 생활소음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아지고 새소리, 벌레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점점 커진다.

 강가에 도달하니 얕은 강이 넓게 흐른다. 아라카와강의 상류부다. 이 강이 동쪽으로 흘러 점점 크고 거칠어져 도쿄를 관통하는 것이다. 평일인데도 강 안에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은 낚시꾼들이 여러명 흩어져 제각기 낚시에 열중이다. 아유는 일본의 강에만 나는 작은 물고기로 지금이 낚시 시즌인 것이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유는 메기정도의 크기로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의 하나다.

 에이지와 히로코는 빨간모자의 낚시꾼을 찾아 근처의 강기슭에 앉아 기다리기로 한다. 모처럼 화창한 6월말의 태양이 내리비치는 강물은 수만개의 은조각이 넘실거리며 흐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강물에 떠있는 수만개의 태양 파편들은 마치 큰 서사시를 읊듯이 잔잔한 노래를 부르면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강물에 취해 앉아 있는 에이지를 히로코가 툭 쳐 정신이 눈앞으로 돌아왔을 때 요네쿠라가 강 기슭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큰 키에 균형잡힌 체격이다. 신문사에서 은퇴한 사람이라 하여 서생 같은 약한 지식인을 기대했던 에이지는 가벼운 배신감을 느낀다.

 “요네쿠라상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네…, 카부토초 백양사 세탁소의 마부치상의 소개로 찾아 온 다나카 에이지라고 합니다.”

 “허… 그래요? 드문 일인데…”하며 요네쿠라는 낚시장구를 땅에 내려놓고 모자를 벗는다. 예의를 갖추는 셈이다. 가까이보니 6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데 스포츠형의 짧은 머리가 반은 백색이고 서글서글한 호남아 스타일이다. 그물 속에는 아유가 한 열마리 들어있다.

 “오늘 오전 노동의 산물이지요”라고 요네쿠라는 씩 웃으며 집으로 향한다. 따라오라는 몸짓이다. 요네쿠라댁의 뒤뜰에 평상을 펴놓고 네 사람은 아유파티를 벌인다. 숯불위에 석쇠를 놓고 구운 아유는 뼈만 남기고 내장째 씹어 먹는데 내장의 쌉쌀한 맛과 살의 달콤한 맛이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소주를 오크통에 백년 숙성시킨 백년의 고독을 곁들이니 서로 이야기하기 귀찮을 정도로 맛에 심취하게 한다. 백년의 고독을 언더록으로 서너잔 마신 후 에이지는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 물며 이야기를 붙인다.

 “참 좋은 곳으로 은퇴하셨습니다.”

 “음…, 카부토초의 복마전에 질려 이런 곳에서 조용히 살다 죽고 싶어 오랫동안 눈독을 들여왔지…” 요네쿠라의 말투는 어느덧 후배를 대하듯 편한 말이다.

 “증권신문사에는 오래 계셨습니까?”

 “대학졸업하고 경제연구소에 취직했는데 증권시장을 담당하게 되어 몇 년 있다가 옮겼으니 30년은 넘은 셈이지.”

 “카부토초의 산증인이시네요.”

 “글쎄…, 볼 것 못볼 것 다 봤다고 할 수 있지.”

 여기서 에이지는 망설이다 본론을 꺼낸다.

 “혹시 카부토초의 늑대라는 인물에 관하여 아십니까?”

 “카부토초의 늑대…. 이노우에 신지….”

 요네쿠라는 두개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를 뿐 다른 말이 없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그 인간에 대하여 왜 관심이 있는지 먼저 말하게” 요네쿠라의 눈빛과 말투는 이제까지와 달리 냉정하다. 에이지는 그의 협조를 얻으려면 솔직히 까놓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만…. 이노우에 그 놈은 악연의 연출자야” 에이지의 이야기를 다 들은 요네쿠라가 뱉은 첫말이다.

 “악연의 연출자라니요?”

 “사람이 다치고 망하는 인연만 만들고 다니던 놈이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자네 민영화라고 아나?”

 “네, 대충은….”

 “공기업의 민영화는 새로운 주식투자의 기회를 창출하지. 70년대부터 일본은 민영화의 물결 속에서 크고 작은 많은 기업들이 민영화하지 않나. 민영화하여 주식이 거래소에 상장하면 대개는 가격이 수배로 튀게 되어있네. 그러니 이를 미리 아는 자는 신규주식만 확보해 놓으면 앉아서 돈을 버는거지. 미리 안다는 것은 내부자거래를 말하는 것이고 증권거래법상 중죄에 해당하는 거야. 하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많지. 돈이 필요한 정치가 그리고 정치가에게 돈을 주고 싶은 기업에 신규주식은 매우 편리한 방편이야.”

 “그러면 이노우에라는 사람은 정치가와 기업사이에서 증권의 양도 및 매매를 하는 채널이었다는 겁니까?”

 “바로 그거야. 하지만 그것은 민영화 초기의 일이지. 일단 그 분야에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인맥이 늘어나고부터는 총회꾼으로 돌았지.”

 “원래는 무얼 하던 사람입니까?”

 이 질문에서 요네쿠라의 관심은 이노우에에서 백년의 고독으로 돌아온다. 시간은 어느덧 늦은 오후로 넘어가 강건너 숲이 한결 짙고 고즈넉하게 보인다.

 “원래 그 자는 철폐업을 하던 자야.”

 “철폐업이란 낡은 건물을 부수고 공사부지를 정리하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 왈패직업이지. 지방에서 무명의 철폐업자로 있던 이 자의 운이 트인 것은 T수상의 눈에 든거야.”

 “T수상이라면 니이가타현 출신으로 컴퓨터달리 불도저라는 별명의 그 유명한 분 말입니까?”

 “그래. T수상이 아직 니이가타현의 건축업자일 때 중학교 후배이고 빠리빠리한 철폐업자 이노우에가 눈에 든거야. 그래서 수상이 되자 같이 중앙으로 진출하여 비서실에 배속되어 수상과 자민당 정책조정위원회의 연락책을 맡게 되었지. 자네가 아는지 모른지만 자민당의 정책조정위원회는 국정의 중요사항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당정연결기구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 이노우에에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었어.”

 “그렇겠군요.”

 “머리 잘 돌아가고 왈패기질의 이놈이 관심을 가진 부분이 노조가 크고 앞으로 민영화할 공기업들이었지. 정치적으로 거대한 뜨거운 감자지만 이권의 측면에서 보면 노다지 광산이었으니까. 자네가 JTT에 있었다니 잘 알꺼야.”

 “충분히 알아 듣겠습니다. 수상의 비서실에 있으면서 증권의 거래차익을 정치자금으로 돌리는 역할을 한 것이군요.”

 “그렇지. T수상뿐 아니라 많은 정치거물의 숨은 증권담당이라고 할 수 있었지. 이를 위하여 이놈은 유령회사를 여럿 차려놓고 정보원, 조직폭력배를 많이 거느렸지. 나중에는 자신의 경제연구소를 차려 박사학위 소지자들도 고용할 정도였니까. 물론 그때는 이미 T수상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한 상태였지만….”

 “이노우에가 JTT의 민영화에 관여한 것은 언제부터 일까요?”

 “내가 그걸 정확히 알 수는 없지. 물론 80년 이후의 일이고 이때는 이미 T수상의 영향력이 별로 약발이 없던 시대이니까 다른 정치거물과 손을 잡고 있었을꺼야. 이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자민당의 파벌세력도를 알 필요가 있어.”

 자민당의 파벌세력도라….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1955년 이래 일본을 지배해오고 있는 자민당은 이념을 공유하는 하나의 정당이라기보다는 이익에 따라 뭉친 여러 파벌의 동거생활이라 할 수 있다.

sjroh@alum.mi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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