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소니를 지배한 혁명가

 ◇소니를 지배한 혁명가 아사쿠라 레이지 지음 이종천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천하의 소니가 아이들 장난감을 만든단 말이야?”

 90년대 초 소니 내에서 게임기를 만들자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대다수의 소니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AV기기 중심의 무게 있는 가전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던 소니로서는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은 결국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소니 역사상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됐다.

 이처럼 단순 전자업체 소니를 게임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디지털기업으로 변신시킨 것은 한 문제 직원의 꿈과 그 꿈을 이루려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문제아 직원이 바로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타라기 겐(52). 이 책은 문제아 샐러리맨에서 최연소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 오른 구타라기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의 잉태에서 탄생까지 그 전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처음에 구타라기가 가정용 게임기를 만들자고 했을 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회사에 해를 끼치는 위험인물로 몰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어려움에 맞서 싸운다. 마침내 그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신화를 일궈낸 것이다.

 저자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든 건 구타라기 겐이지만 구타라기 겐을 만든 건 소니의 시스템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구타라기라는 인물과 소니의 시스템이 신기술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상업화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는 엉뚱하게도 신기술을 게임기와 연결시킨 명쾌한 비전을 가진 한 인물의 집념에서 비롯됐지만 상업화하는 과정에서 소니의 시스템이 없었다면 그런 대성공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소득은 경영진 회의에서 프로젝트 추진을 결정하자마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소니의 거대 시스템, 바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힘의 실체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즉 오가 노리오 사장의 결단을 비롯해 불가능에 도전하는 소니 엔지니어들의 열정, 새로운 유통시스템을 창출한 마케팅 귀재의 아이디어, 상식을 뒤집은 광고전략, 소니의 디자이너들이 최고의 디자인을 뽑아내기 위해 벌이는 고뇌어린 작업 등 이 모든 것이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게임기 박스 안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저자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잉태에서 탄생, 세계 게임기 시장을 평정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수많은 관련자들과의 인터뷰와 증언을 토대로 소설처럼 재미있게 재구성했다.

 이 책에서 드러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구타라기가 게임기에 들어갈 메모리 타입을 정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삼성전자에 와서 그 해답을 구해갔다는 대목이다. 그가 플레이스테이션을 개발할 당시 앞으로 어떤 메모리 타입이 주류가 될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량으로 팔리는 게임기의 메모리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거나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면 게임기 제조회사의 생산은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잘못된 판단은 파국을 부를 것이다.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해 삼성을 찾아온 구타라기는 삼성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EDO(Enhanced Data Out) D램이 PC용의 표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이를 플레이스테이션의 메모리로 채택했다.

 “나는 한국의 삼성전자가 세계 제1의 반도체 회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술적인 우수성, 자본, 공격적인 경영, 성공의 삼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구타라기가 이 책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구타라기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을 바탕으로 문제아 직원에서 일약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CEO로 화려한 비상을 했다. 대규모 사업을 일으키겠다는 그의 꿈은 이뤄진 것 같으나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구타라기는 PS2보다 처리능력이 무려 1000배 더 높은 신개념의 게임기 PS3를 2005년까지 선보인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중이다. 256쪽. 1만원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