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19)농촌 정보화 이끄는 `386세대` 2인방

 386세대(30대 연령,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들이 변화하는 시대의 중심에 서 있다.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정보화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자칫 m(모바일)세대와 40∼50대 컴맹세대 어느 쪽에도 수용되지 못한 채 ‘어중간한’ 처지로 전락할 수 있었던 그들이 자기 색깔과 역할을 찾아나선 것이다. 지금 농촌에 불고 있는 뜨거운 정보화 열풍 속에서 ‘한여름 빗줄기’ 같은 그들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충북 충주시 양성면 목마리 `밤골도예원` 이준우씨 

 충북 충주시 앙성면 목미리 밤골도예원. 흙기운이 가득한 느낌으로 들녘 가장자리에 나즈막히 앉아 있는 이 도예원의 주인은 이준우씨(39)다. 지난 14일 지리한 장마 속에 사람 키높이보다 더 자랐을 옥수숫대가 푸르게 둘러싼 너른 마당의 도예원에서 이씨는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이씨는 전업농사꾼이 아니면서도 같은 마을 농사꾼들로 뭉친 사이버두레 ‘앙성농군회(http://www.angsungfarmer.com)’의 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지난해 2월 1일 정식 오픈한 앙성농군 사이트는 여느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와 달리 환경과 농민문제,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총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만든 고향 같은 사이버공간이다. 물론 복숭아·옥수수·쌀 등 직접 거둔 농산물을 도시의 온라인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을 중요한 역할로 삼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친환경적 농사’와 ‘참다운 먹거리의 생산’에 있다.

 이 회장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앙성농군 회장직을 떠맡은 것은 아니다. 그가 중학교까지 앙성면에서 살다가 서울로 학교를 옮기고, 경희대 도예과를 마친 뒤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것은 지난 95년.

 고향으로 되돌아온 이유를 이 회장은 “서울에선 마땅한 가마터를 찾지 못해서”라고 했지만 그를 더 강하게 끌어당긴 것은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고도 사회적인 대접은 물론 제대로 된 값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쓰러져가고 있는 농촌과 이웃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볼 수만 없었던 현실인식에서였다.

 그래서 그는 귀농해 우선 이웃과 친해지고 생각의 틈을 좁히는 노력과 함께 농민의 삶을 경쟁력 있게 바꿀 수 있는 방도를 찾는 데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이웃 농사꾼들이 농약사용을 줄이고 ‘땅힘’으로 열매를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지난해 6가구 농군들이 의기투합해 앙성농군을 탄생시켰다.

 1년 5개월이 경과하면서 회원 중 1가구는 “소출이 너무 줄어들었다”며 중도하차하는 곡절도 겪었지만 이제 앙성농군은 사이버세상에선 제법 잘 알려진 참농사꾼 조직으로 성장했다. 과실맛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제초제 사용은 일절 하지 않는다. 수확철의 일정기간 앞뒤로는 절대 병충해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친환경재래식 농법으로 농사짓는 ‘동지’들이 앙성농군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 회장은 자신들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인터넷이라는 통로가 없었으면 앙성농군의 소박하고 진정한 꿈도 지금처럼 영글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사이트 앞머리에 내건 다짐이 말해주듯 우리는 ‘정직한 농법’에 100% 의존한다”며 “그같은 진실을 가장 널리, 빠르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매체는 인터넷밖에 없다”며 인터넷의 강한 힘에 자신감을 보였다.

 쉰이 훌쩍 넘어버린 한 회원이 지난해에 사이트를 오픈하면서 처음 만져본 컴퓨터를 익히려고 손가락 위에 자판을 적어가며 컴퓨터를 익히던 모습을 이제는 즐거운 추억으로 회상하게 됐다. 하루종일 고된 농사일에 시달리고도 집에 돌아와 천근 같은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온라인 주문장을 검색하고, 일일이 메일에 답신하는 정성도 잊지 않는다.

 오는 27일 이 회장은 또 하나의 큰 이벤트를 준비중이다. 이날 도예원의 넓직한 앞마당을 활짝 열고 ‘환경농법 체험현장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해 벌써 네 번째인 이번 행사는 서울과 경기지역의 농산물 소비자 300여명이 참석을 예약했을 정도로 인기다.

 “복숭아밭을 직접 다니면서 앙성농군의 과실이 왜 당도가 높은지, 약간은 벌레 먹고 못생겼지만 왜 사람 몸에 좋은지를 직접 비교·확인케 한다”며 “자연학습과 농촌견학, 도자기 빚기를 곁들인 프로그램 내용으로 남녀노소 참석자 모두 반응이 아주 좋다”고 자못 큰소리를 친다.

 온·오프라인을 종횡무진 누비며 농촌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그에게서 참다운 세상빚기에 구슬땀을 쏟는 진정한 도예가의 흙손길이 느껴졌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부윤리 정보센터 오동석 씨 

 충북 음성군 내소면 부윤리 정보센터의 터줏대감 오동석씨(39). 해가 여전히 중천인 지난 14일 오후 5시, 수박농사꾼인 그는 수박밭이 아니라 정보센터 내 아이들 틈바구니에 있었다. 10여개나 되는 그의 공식직함 중에서 가장 애착을 느낀다는 행정자치부 지역정보화시범마을 부윤리정보센터 운영위원장 역할 때문이다.

 노인정 2층에 자리잡은 10평 남짓의 정보센터는 마침 학교를 파하고 컴퓨터놀이를 위해 몰려든 아이들로 북적였다. 오 위원장은 중간중간을 다니며 소란도 잠재우고, 컴퓨터 작동법도 간간이 알려주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지금은 부윤리 ‘정보화 전도사’가 돼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가 토착인으로서 정보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컴퓨터·인터넷기능을 속속들이 배워온 것은 아니다. 중학교를 부윤리에서 마친 그는 수원의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이후 머리가 굵을 때까지는 소위 ‘도시물’만 먹고 자랐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짧은 직장생활 끝에 지난 93년 ‘컴백 홈’을 결심한다. 그는 “부모님이 많이 연로하셨고, 농사일을 떠맡을 사람이 없어서”라고 낙향의 변을 털어놓았지만 기자와의 대화과정에서 그는 ‘지역일꾼으로서의 소임’에 더 큰 매력을 느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역일꾼을 향한 비전은 지난 97년 33세의 나이에 부윤리 이장으로 최연소 선출되면서 첫 결실을 맺었다. 당시 내소면 이장회의를 하면 “어린애가 왔다”며 놀림을 받았던 것이 당시 농촌문화의 현실을 깨닫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됐다고 기억한다.

 그는 “이장에 뽑히면서 가장 크게 먹었던 마음가짐은 부윤마을을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결심이었다”며 “수도권과 1시간 거리의 근접성을 갖고 있고 다른 농촌에 비해 비교적 젊은층이 많이 남아 있는 특성을 활용해 변화의 물꼬를 트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물꼬가 바로 정보화였다. 지금도 몇몇 아파트와 논공단지 등이 들어서 언뜻 농촌 같아 보이지 않는 부윤리를 정보화마을로 혁신시키고자 나선 것이다.

 그리고 2001년 5월 30일, 부윤마을은 행정자치부가 선정한 전국 19개 정보화시범마을 중 한 곳으로 당당히 선정된다. 같은해 12월 행자부와 충청북도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마을정보센터가 개관했으며, 2002년 5월엔 마을홈페이지(http://buyun.invil.org)가 전국 정보화마을 사이트 동시오픈과 맞물려 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마을에도 큰 변화가 찾아들었다. 정보화마을로 선정되기 이전에 컴퓨터를 가진 집은 간혹 찾을 수 있어도 개인 e메일을 쓰는 사람은 전무하다시피했다. 2년여가 지난 지금 개인 e메일 하나 쓰지 않던 부윤마을 사람 중 약 80%가 현재 e메일을 쓰고, 그 중 67명은 개인홈페이지를 구축해 사용하는 상황으로 탈바꿈했다.

 오씨는 “부산·광주 등 전국을 가리지 않고 쫓아다니며 정보화 사례를 배우고, 우리마을 현실에 맞게 접목시키려 했던 고생이 늘어난 마을 인터넷 사용자들을 보면 눈녹듯이 사라진다”며 기분 좋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금지옥엽’ 딸 하나를 키우며 농사일에 바쁜 그가 요즘 온 정성을 쏟고 있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부윤리 마을입구에 ‘정보화마을 테마공원’을 만들기로 하고,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공원조성사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정보화로 앞서가고자 노력했던 주민 하나하나의 정성을 모아 공원을 만들려고 합니다. 다른 시도 정보화 담당자들이 한번쯤 들러 부윤마을이 정보화로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정보화마을 특성화로는 완전히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행자부의 예산지원으로 진행되는 공원조성사업을 위해 요즘 오 위원장은 온마을을 누비듯 헤집고 다닌다. 다행히 주민 모두 정보화 이해도가 높고 열정이 큰 만큼 공원사업 성공에 대한 확신이 큰 것이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정보화를 향한 소신과 젊은 패기로 똘똘 뭉친 오 위원장의 눈빛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은 농촌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충주·음성=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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