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통신의 운명이 또다시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24일 열린 이사회가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이 제시한 외자유치 협상조건 가운데 특히 주당 인수가격(3000원)이 턱없이 낮다는 점을 문제삼아 협상안을 사실상 부결시키면서 비롯됐다. 현재로서는 하나로통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로통신이 앞으로 남은 4, 5일 동안 이사회 결의대로 AIG-뉴브리지 컨소시엄과 재협상을 통해 유리한 가격조건을 끌어내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현조건에서 이사회 또는 임시주총에 최종 결단을 맡기는 방안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이사회에서 협상안 잠정보류에 결정적 역할을 한 LG그룹 측의 의중에 관심이 쏠린다. LG는 무엇보다 통상적인 경영권 프리미엄을 30% 선으로 책정한다는 점에서 주당 인수가격이 최소한 4000원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LG그룹 측 고위 관계자는 “1만원 이상에 들어온 구주주들의 권익이나 하나로통신이라는 국가 기간통신사업자의 자산 가치를 따지더라도 현시가 수준의 인수가격은 말이 안된다”면서 “캐피털게인(자본이익)을 노린 해외 투자자들의 전형적인 행태며, 하나로통신을 얕잡아본 협상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에서 이 같은 협상가격 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 심지어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은 껌값에 불과한 실사비용조차 하나로통신에 떠 넘기는 것을 협상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하나로통신이 처한 사면초가의 형국을 적절히 활용하는 느낌이 크다”면서 “압박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유리한 조건을 따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이사회에서 협상안 유보를 주도한 LG는 물론 하나로통신 이사진·경영진 모두 협상안을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다. 아무리 인수가격이 낮다 해도 더이상 외자유치를 늦추다간 재무구조가 악화돼 법정관리로 갈 공산이 크고, 그럴 경우 현주주 및 경영진에도 심대한 타격을 주게 된다.
특히 투자여력은 없지만 줄곧 하나로통신을 탐내온 LG의 입장은 더욱 곤혹스럽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외자유치 협상이 결렬된다면 경영권 확보를 위한 시간은 벌겠지만 책임 부담을 피할 수 없는 데다 만에 하나 유리한 협상조건을 성사시킨다 해도 경영권을 넘겨줘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하나로통신 외자유치의 향배는 당장 기존 경영권이나 지배구조는 물론 LG를 축으로 한 후발통신사업자 시장 재편 정책과 맞물려 다음달 주총까지 안개 속에서 숨가쁜 막후협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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