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전자산업 `신 삼국지`

 지난 1966년 금성사(지금의 LG전자)는 국내 전자업체로는 처음으로 19인치 흑백 TV를 출시, 국내 TV생산 시대를 개막했다. 그러나 핵심부품인 브라운관 등은 여전히 일본의 전자업체로부터 수입, 후발업체로서의 기술력 격차를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역전됐다. LG필립스LCD가 지난해 TV분야 세계 최고 브랜드를 자랑하는 소니에 LCD TV용 LCD를 공급하기 시작한데 이어 LG전자가 다음달부터 일본 유수 TV업체들을 대상으로 PDP 모듈을 공급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일본의 TV업체 3, 4곳과 LCD TV에 들어가는 대형 LCD 패널 물량을 놓고 막판 협상에 착수했다.

 ◇입장바뀐 한국과 일본=LG전자 PDP마케팅팀의 최철기 상무는 요즘 일본 유수 TV업체들로부터 PDP모듈을 공급해달라는 문의를 하루에도 몇건씩 받고 있다. 최 상무는 “일본에도 PDP모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있지만 일본 TV업체들의 수요를 못따라가고 있는 데다 LG전자의 PDP모듈의 성능이 전혀 일본업체들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지난해부터 공급문의가 쇄도했다”며 “다음달 500대를 시작으로 연말에는 일본 TV업체에 공급하는 물량이 월 1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LG필립스LCD도 지난해부터 소니에 13인치, 15인치, 17인치와이드, 20.1인치, 30인치 등 총 5개 TV용 LCD패널을 공급중이다. 소니와는 지난해부터 TV개발단계부터 서로 협력하는 등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대형 LCD TV용 패널사업을 크게 확대하면서 일본업체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3, 4개 TV업체와 패널공급을 놓고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조만간 계약이 성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만·중국 협공에 시달리는 한국=한국이 디스플레이분야에서 일본을 점령해가고 있는 반면 중국 및 대만산 인쇄회로기판(PCB)업체들로부터 핵심 원자재인 동박적층원판(CCL)을 위협받고 있다.

 난야·킹보드·포리크레이드·EMC 등 중국 및 대만이 원산지인 CCL 제품들이 국산 대비 뛰어난 가격 경쟁력과 대등한 품질을 앞세워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2년 전 진출, 물류센터까지 갖춘 대만 난야 국내 총판인 킴스코퍼레이션 김상록 사장은 “올해 전년 대비 약 2배 성장한 월 10만장을 판매할 계획이며 초박 원판 시장은 물론 친환경(프리할로겐) 등 고기능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두산전자 BG·LG화학 등 CCL 사업부들은 이같은 경쟁체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만 및 중국산 제품이 물밀듯이 들어옴에 따라 범용제품의 출혈경쟁을 유도하고 고부가제품마저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두산전자 BG 한 관계자는 “페놀 재질의 원판 시장에선 국내 업체들이 사실상 손을 들었고 에폭시 원판에서도 중국 대만산이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며 “지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줄어든 89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실제 오리엔텍은 올해부터 중국산인 포리크레이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LG화학 CCL만을 주로 구매해왔으나 세트업체의 공급단가가 자꾸 떨어져 원가절감 차원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오리엔텍 김상홍 사장은 “중국산이 10∼20% 이상 저렴한 데다 품질도 성능시험을 거친 결과 우수하다”며 “월 생산물량의 절반을 중국산 CCL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엑큐리스는 지난해 기판 생산 물량의 5% 가량을 생익 등 중국산 원자재로 사용했으나 이달 현재 중국산 비중을 8%로 2배 가까이 높였다. 이수페타시스는 올해 140%의 원가 절감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만 및 중국산 CCL에 대한 생산현장에서 성능시험을 벌이고 있고 심텍도 올해 처음 중국 등 동남아산 원판 사용을 검토중에 있다.

 LG화학 한 관계자는 “대만 및 중국산이 시장 타깃을 1.6T 이상의 뚜꺼운 원판에서 고부가인 박판(0.l∼0.2T)으로 확대하고 있다”며 “국산제품의 장점인 신속한 납기 능력도 점점 퇴색되고 있어 살아남기 위해선 저유전율·고내온성·저팽창성 등 고기능 제품개발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