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의 승전 선언을 계기로 미국-이라크간 전쟁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과도정부 수립 등 현안이 쌓여 있지만 세계 정보기술(IT) 업체들은 벌써 전후 특수라는 과실을 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이라크전이 국내 IT업계에 갖는 의미와 향후 이라크를 포함한 대중동 IT시장 진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각계 전문가를 초빙, 특별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라크 재건 프로젝트가 국내 IT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민·관 모두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참석자> △김인수 <정보통신부 IT해외진출지원팀장> △황의갑 <외대 중동연구소 교수> △장연 <서브넥스테크놀로지코리아 사장> △이성권 <굿모닝신한증권 최고 이코노미스트> (사진 왼쪽부터 입니다)
◇장연(서브넥스테크놀로지코리아 사장)=제가 직접 바그다드에서 10여년간 무역업을 하며 목격해온 바로는 미미하기는 하나 한국산 IT제품의 이라크 수출은 전쟁 이전에도 꾸준히 있었습니다. 물론 대다수 IT제품은 유엔의 금수조치에 묶여 이라크 내로의 정식 수입이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요르단·시리아 등 인접국가를 통한 비공식 유입을 통해 LG·삼성·대우 등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브랜드 인식도는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김인수(정통부 IT해외진출지원팀장)=정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이라크 IT수출은 46만5000달러입니다. 이는 국내 전체 IT수출액인 11억7000만달러 가운데 극히 적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라크 전후 복구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이를 통해 수출시장을 다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동의 풍부한 오일 머니는 여전히 일선 업계에 매우 큰 매력요소로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 중입니다.
◇이성권(굿모닝신한증권 최고 이코노미스트)=우리나라의 대이라크 수출 현황은 기계·유화 등에 집중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군인 IT제품에 대한 수출은 상대적으로 극히 미미합니다.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황의갑(외대 중동연구소 교수)=늘상 나오는 말이지만 중동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일단 이번 이라크 전후 복구시장 진출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플랜트·건설 등을 통한 기간인프라의 구축이 일단 이뤄져야 IT분야의 진출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전후 복구의 키를 쥐고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IT진출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등 보다 멀리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장연=몇 해 전 한국산 국설교환기와 CDMA 방식을 이라크에 도입하는 건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 업체들은 이라크 시장에 대해 근시안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결국 프랑스·중국업체에 사업권이 넘어갔지만 우리 업체들이 조금만 이라크 시장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긴 호흡을 갖고 대처했다면 충분히 우리의 IT와 노하우를 이라크인들에게 뽐낼 수 있었던 기회여서 지금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인수=전후 복구를 위해서는 도움의 손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인도적인 차원의 IT지원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예컨대 ‘국제정보격차해소사업’ ‘해외인력초청연수’ ‘개도국인터넷인력개발’ 등의 사업에서 이라크도 대상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인터넷청년봉사단 등의 파견도 현지 사정의 호전도를 봐가며 결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황의갑=IT봉사단 파견의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봉사단이 가서 별다른 할 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무차별 공습으로 인해 현재 이라크 현지 통신사정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역시 좀더 시간을 갖고 통신인프라가 갖춰지는 추이를 지켜보며 파견 시기를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연=기본적으로 이라크는 개도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라크 국민들 역시 자신의 조국이 인류문명이 발상지라는 정신적 자존심이 대단합니다. 수십년간의 전쟁으로 산업기간시설이 황폐화돼 있지만 한국보다 산업화·개방화가 먼저 됐습니다. 또 미국 등 서방의 경제체제 조치 이전만 해도 국민의 생활수준 역시 유럽의 명품들만 선호할 정도로 높았습니다. 이라크를 우리보다 낮은 후진국으로 보는 기본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성권=후세인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두터웠던 이라크 중산층이 몰락했습니다. 대신 상류층은 다소 두터워진 게 사실입니다. 이들을 타깃으로 한 IT진출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IT제품은 먹고사는 문제를 뛰어넘는 아이템입니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 생각해볼 사항이라는 얘기지요. 중동 부호를 타깃으로 한 ‘고급(럭셔리) 마켓’과 함께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가난한 사람들을 겨냥한 차별화된 시장에 우리 IT업계가 관심을 갖고 시장 공략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황의갑=이라크전이 발발하기 직전 몇몇 중동 국가들을 돌아보니 그들의 가족문화를 겨냥한 우리 IT제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에서 국내 한 중소기업이 주로 중동 상류층 가정에 수출중인 ‘홈 가라오케’ 제품이 단연 인기였습니다. 어차피 저가형 제품으로는 중동시장에서 중국산과 경쟁이 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고급시장을 염두에 둔 ‘부자 마케팅’이 우리 IT업계가 살아날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장연=본격적인 이라크 복구시장과 인접 중동시장 진출을 앞두고 일선 업체 입장에서 정부에 바라는 점이 많습니다. 각종 금융지원부터 시작해 특히 미국과의 정치적 협력, 현지 시장정보 제공 등의 역할을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해주었으면 합니다.
◇김인수=얼마 전 미국 퀄컴측과 만나 CDMA로의 전환시 한국과의 공동 진출 등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일선 업체가 이라크 현지 복구 프로젝트나 전자정부 구축사업 등을 수주할 경우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금’ 명목의 자금지원도 가능토록 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KOTRA 등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 현지의 생생한 정보를 제공토록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장연=해외 정보망을 활용한 대국민 계도나 국가 대 국가 차원의 막후 교섭을 통한 한국 업체의 재건 프로젝트 수주 쿼터 확보 등이 선행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업계는 이같은 정보를 전혀 정부측으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와 실패 경험만 늘어납니다. 실제로 걸프전 당시에도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한국 업체의 복구시장 진출은 극히 미미했습니다. 특히 IT업체의 참여는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황의갑=미국은 이번 이라크전 승리를 계기로 이라크뿐 아니라 다른 중동국가도 친미 지역으로 편제할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 과정에서 현재 이라크를 포함한 대다수 중동국가들이 선호하고 있는 유럽의 GSM 방식이 향후 CDMA 방식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업계와 정부는 미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성권=단기전을 통한 압승으로 기세를 세우고 있는 미국이지만 실상 이번 이라크전 승리가 침체된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뾰족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금융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결국 미국과 세계 경제의 부활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IT산업이 다시 부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이라크전은 세계 IT경기에 그다지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장연=결국 미국계 업체가 주도할 대규모 국가 기간인프라 복구 프로젝트에 IT업계가 개별적으로 진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민간시장을 주요 공략목표로 삼아 우리 업체가 먼저 이라크에 들어가 현지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달 이라크전 발발로 외국 업체들이 모두 떠나 있어 현재 이라크 내 민간시장은 무주공산과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이 바로 선점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또 복구사업의 일환으로라도 현지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업체들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정리=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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