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아주 열광하죠. 투자사나 제작사는 저를 잘 만들고 포장해서 흥행에 성공시키려고 안달입니다. 같은 콘텐츠 동네에 살고 있는 음악, 공연과 같은 내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서 좋겠다구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1년에 제작되는 250여편 중에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30편도 안되거든요. 나머지는 극장 간판을 올린 지 2주도 안돼 내리거나 심지어는 2∼3일만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럴때면 저를 만든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망연자실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런데 요즘 희소식이 하나 생겼어요. 극장 간판을 내려도 다시 팬들을 만날 수 있는 기막힌 공간이 생겼거든요. 제가 영원히 살아 숨쉴 수 있는 인터넷 영화관이라는 공간 말이예요.”
인터넷 영화관의 등장으로 극장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던 영화가 빛을 발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씨네웰컴, 무비스, 온키노 등 인터넷 영화관을 찾는 사용자들이 늘면서 이제는 흥행의 척도가 꼭 극장에서만 이뤄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특히 극장에서는 외면당한 B급 코미디물이나 액션물, 성인물 등은 인터넷 영화관 붐을 타고 대박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씨네웰컴(http://www.cinewel.com)이 집계한 2002년 인터넷 영화 흥행순위를 보자. 1∼4위까지는 실제 오프라인 극장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두사부일체, 달마야놀자, 엽기적인 그녀, 조폭마누라가 차지했다. 그러나 5위 이후부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영화들이 올라와 관계자들도 의아해했을 정도.
5위는 2001년 최악의 영화로 평가될 만큼 작품성이나 흥행성에서 참패한 썸머타임. 그러나 씨네웰컴의 인터넷 영화관으로 이 영화를 본 횟수는 무려 89만건으로 놀라울 정도다. 신은경 주연의 ‘이것이 법이다’ 역시 인터넷으로 부활한 케이스. 극장, 비디오, DVD 모든 채널에서 실패한 이것이 법이다는 지난해 7월 개봉해 단 4개월만에 53만회의 접속건수를 기록하며 6위에 올랐다. 일본 영화인 고(GO), 태국영화인 잔다라, 중국 영화인 촉산전, B급 코미디인 뚫어야 산다도 나란히 7∼10위에 올라 인터넷 파워를 보여주었다.
B급 영화의 인터넷 흥행 퍼레이드는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극장에서 개봉한 마법의 성은 서울관객 1만3000명으로 실패한 영화로 기록됐다. 성에 대한 솔직한 담론과 젊은층을 겨냥해 감각적인 화면 등을 내세웠음에도 관객에 어필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마법의 성은 적어도 인터넷으로는 성공한 영화다. 지난 4월 4일 씨네웰컴 인터넷 영화관에서 개봉해 9일까지 단 5일 만에 5만6000회가 넘는 접속건수를 기록한 것. 이같은 추세대로 간다면 올해 인터넷 영화 10선에 들고도 남을 법하다. 보스상륙작전이나 유아독존도 마찬가지. 3만8000명의 서울 관객동원에 그친 유아독존은 3월 7일 인터넷 개봉이후 접속건수가 11만건을 넘어섰다.
인터넷 멀티플렉스를 표방한 무비스(http://www.movies.co.kr) 인터넷 영화관에서도 결과는 비슷하다. 무비스에 따르면 작년 오프라인 극장에서 최고 흥행을 기록한 가문의 영광이 현재 온라인 인터넷영화 관람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오프라인 극장에서는 흥행이 저조했던 ‘보스상륙작전’ ‘화산고’ ‘좋은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줘’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공공의 적, 화산고, 보스상륙작전 등 3편을 비교했을 때 극장에서는 공공의 적-화산고-보스상륙작전 순이었으나 온라인 인터넷 영화 관람 순위에서는 보스상륙작전-화산고-공공의 적 순으로 나타났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4월 현재 무비스의 영화 흥행순위를 보면 보스상륙작전, 좋은 사람있으면 소개시켜줘, 유아독존, 클럽 버터플라이 등 극장에서 빛을 못본 영화가 4편씩이나 10위권에 입성하는 저력을 보였다.
지난해 두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으로 세간의 주목을 끈 영화 죽어도 좋아도 인터넷에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영화계와 팬들의 입에는 많이 오르내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18세 등급을 받고 지난해 12월 극장 간판을 올렸을 때 실제 흥행 수준은 전국 5만명.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죽어도 좋아’에 18세 등급을 부여하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한번씩만 관람했어도 관객 100만명은 넘었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적어도 인터넷 개봉에서는 상당한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지난해 무비스에서 극장 개봉에 맞춰 단 몇시간 동안 온라인 상영을 한 결과가 좋아 이런 기대를 낳게 한다. 당시 15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관람서비스를 시작한 지 단 몇시간 만에 매진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극장 개봉성적과 온라인 흥행이 달라지는 것은 무엇보다 극장이 갖고 있는 오프라인 상영의 구조적인 한계에 기인한다. 블록버스터급 영화나 화제성 작품의 경우 극장이 흥행을 주도하겠지만 한해 250여편에 이르는 영화를 시간, 공간적인 제약이 뚜렷한 오프라인 극장이 모두 소화할 수 없는 만큼 나머지 영화에 대한 노출이 어렵다는 것.
그동안은 비디오나 DVD 등 물리적인 제약을 약간 해소하는 차원의 부가 채널밖에 없었지만 온라인 영화관을 통해 이러한 제약이 완전히 해소됐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할리우드 메이저급 영화가 인터넷으로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거나 대박작에 대한 온라인 상영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도 B급 작품의 흥행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는 ‘극장 가서 보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안보기는 아까운 영화’의 경우는 인터넷으로 부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인터넷 영화관 업체들의 반응이다. 특히 최근에는 월 6000원에서 1만원선이면 한달동안 고화질 영화를 비롯해 보고싶은 영화 수백편을 마음대로 인터넷으로 관람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B급 영화들의 구제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
씨네웰컴 기획팀 이제면 팀장은 “인터넷은 철저한 개인화가 가능한 미디어이기 때문에 기존 극장과는 다른 패턴이 인터넷 영화관에서도 보여지는 것 같다”며 “아직 인터넷에서 상영하는 영화편수가 적기는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인기가 떨어졌던 영화도 얼마든지 온라인에서는 인기를 끌 잠재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 영화관 흥행에도 공식은 있다. 흥행을 이끄는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은 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 무비스가 온라인 관객들의 반응을 조사한 결과 여유시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소재의 경쾌한 영화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월 8일 기준 무비스 관람 순위 30위권에 들어있는 영화를 분석해 보면 코미디가 14편으로 46%, 액션이 7편으로 코믹·액션류가 전체 흥행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인물도 26%로 높게 나타났다. 무비스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 극장에서 가벼운 소재가 더욱 인기를 끄는 것은 인터넷이 이제 휴식의 도구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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