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산업부·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미국 상무부가 하이닉스반도체에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던 배경과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면서 국내 산업계에 일대 파문이 일고 있다. 미 상무부의 판결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미국 정부는 금융 지원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수출장려 및 산업육성책에 대해 ‘보조금’이라는 잣대로 재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가 임시투자 세액공제와 G7 프로젝트를 이유로 0.16%라는 상계관세율을 적용받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2000년 산업구조조정용으로 투입된 금융권의 신디케이트론, 수출환어음(DA) 한도확대, 산업은행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 등이 모두 정부의 ‘보조금’이라는 게 이번 판단의 근거다.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채무조정, 이자율 인하도 모두 보조금으로 간주됐다. 한마디로 하이닉스의 자금 흐름 전반에는 모두 정부의 지원이 깔려져 있다는 주장이었다.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심지어 마이크론은 산업용 야간 전기료 할인도 보조금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의 거의 모든 산업이 해당된다. 미국의 일방통행식 잣대를 피해갈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하이닉스를 시작으로 인쇄용지산업, 철강산업 등에도 저리 융자 및 지급 보증 등을 문제 삼아 대대적인 통상 압력을 가할 태세다. 자칫 잘못하면 제2, 3의 하이닉스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가 이번 문제에서 강하게,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여전히 ‘전혀 개입이 없었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채권단의 금융지원은 상업적 판단이라는 것. 또 각종 수출지원책과 산업육성책을 모두 보조금으로 간수할 수 없다는 반박논리를 펼치지만 미국 정부는 귓둥으로도 듣지 않는 느낌이다.
본판정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 각 부처와 산업계, 통상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더이상 물러설 때가 없다는 각오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애꿎은 젊은 인력들을 이라크에 파병하는 단순한 대응 방안으로 통상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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