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신윤식과 박운서

◆이윤재 논설위원  

 얼마전 하나로통신 신윤식(67) 회장이 주총 자리를 빌려 용퇴했다. 통신1세대의 별자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측근들은 눈시울을 적시면서 40년 가까이 국내 통신업계와 호흡을 같이해온 거장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그의 퇴진은 한 켠에선 LG그룹, 특히 데이콤 박운서 회장(64)에게 밀려난 것처럼 비쳐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총 전날까지만 해도 팽팽한 표대결을 예고할 정도로 자진 사퇴의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래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신 회장이 세불리기를 의식해 물러났다고도 해석했다.

 신 회장은 스스로가 은퇴할 뜻을 여러차례 밝혔다. LG에 하나로통신 인수를 종용하면서, 외자유치를 추진하면서 그리고 사석에서. 하나로통신이 안정기조에 들어서면 언제든지 후배에게 자리를 내주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이처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가 남긴 것은 적지않은 의미를 지닌다. 우선, 그는 우리나라가 초고속인터넷(ADSL) 강국으로 올라서는 단초를 제공한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KT가 ISDN을 내세우던 90년대 후반에 그는 ADSL 상용화를 선언, 선풍을 일으켰다. 다소 직선적이고 거칠다는 캐릭터에 걸맞게 ADSL서비스를 밀어붙여 하나로통신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는 또 KT의 ISDN 포기와 동시에 ADSL 동참을 이끌어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지난해 1000만 가입자 시대를 열면서 세계 1위의 초고속인터넷 국가로 우뚝 섰다.

 신 회장은 정통부 전신인 체신부 차관(20대)을 끝으로 데이콤, 하나로통신 등 통신업계의 CEO로 변신한 후 장관 하마평에 매번 거명됐던 인물이다. 신 회장과 데이콤 박운서 회장이 자주 비교되는 것도 차관 출신의 통신CEO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성격도 비슷하고 종교도 두 사람 모두 기독교다. 여기에 한 사람은 체신부, 또 한 사람은 상공부(현 산자부)에서 잔뼈가 굵은 통신CEO라는 점때문에 항상 통신업계의 관심인물로 비교됐다. 신 회장은 행시 1회, 박 회장은 행시 6회다.

 박 회장이 LG그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9년 LG상사 국제영업담당 고문으로 영입되면서부터다. 이후 LG그룹의 IMT2000사업추진단장을 맡으면서 통신업계에 명함을 내밀었다. 그는 비동기식 IMT2000사업권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지난해 하나로통신과의 파워콤 인수전에서 승리, 그룹내 통신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돈 한푼 안들이고 하나로통신을 끌어안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통신업계에 뒤늦게 합류해 이제까지는 놀라운 기량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금 신 회장은 하산하고 박 회장은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올라선 박 회장은 이제 LG를 중심으로 한 통신3강 구축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LG를 통신3강에 올려놓아야 파워콤 인수 때부터 본격화된 그의 행보가 완결되기 때문이다. 하나로통신의 경우 신 회장이 물러났다고 하지만 아직은 최대주주(약 16%)일 뿐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배주주가 아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두루넷도 끌어안아야할 대상이다. 무엇보다도 데이콤, 파워콤, LG텔레콤 등 통신계열사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전면적인 투자와 인재등용이 당장 눈앞에 놓인 과제다.

 신 회장도 LG가 하나로통신을 비롯한 제3세력을 규합해 KT, SK텔레콤에 이은 통신3강으로 거듭나기를 갈망해왔다. 박 회장은 이제 신 회장의 빈 자리까지도 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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