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이 아닌 실력으로 경쟁하자.’
동유럽의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세계 IT산업계의 지역감정에 울고 있다. 만만치 않은 기술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구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서유럽이나 미국인들의 고정관념에 부딪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유럽 지역의 IT기업들은 세계 무대 진출시 기술의 벽보다 편견의 벽을 넘는 것이 더 힘들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미국이나 서유럽 사람들이 동유럽의 구 소련권 국가들은 으레 IT 수준이 낮을 것이란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유럽에 낮은 인건비를 겨냥한 생산시설만 세울 뿐 동유럽 기업들이 우수한 기술을 갖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체코 같은 나라는 전통의 공업 강국으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반면 인건비는 서유럽 인력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체코의 DB시스템소프트웨어는 PC·오디오·TV·DVD 등의 가전기기를 한데 묶는 리눅스 기반 홈엔터테인먼트 서버를 개발했다. 이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마쓰시타·소니 등 세계적 대기업들도 사운을 걸고 매달리는 분야다.
DB시스템소프트웨어는 유통 채널과 마케팅 능력을 갖춘 외국 대기업들과 제휴를 추진했지만 싸늘한 반응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데이비드 베런 사장은 “무궁무진한 홈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독자기술을 갖고 있지만 동유럽 기업이란 이유로 푸대접 받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헝가리의 벤처투자업체 T벤처 스티븐 코피츠 사장은 “어느 빌링솔루션 업체는 단지 ‘헝가리’ 기업이란 이유로 통신업체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아 서유럽으로 본사를 옮긴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얼마 후 헝가리 통신기업들과 기술 공급 계약을 맺었다.
선진국 투자가들은 이들 구 공산권 국가들이 유럽연합(EU)의 경제권에 편입되고 EU 단일 통화를 채택해 경제가 발전할 경우를 대비, 동유럽에 수십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서유럽 기업들에 대한 투자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동유럽 국가들은 해외 이전 혹은 해외 거점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폴란드의 컴아크는 마이애미에 미국 본부를 두고 국제적 기업이미지 심기에 나섰다. 고객들에겐 폴란드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같은 서비스를 보다 낮은 가격에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소프트웨어 기업을 미국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 비싼 값에 팔았던 체코의 스타 IT기업인 로만스타넥도 새 기업 시스티넷을 시작하기 위해 결국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국이나 서유럽 진출은 동유럽 기업들이 세계시장에 접근하고 첨단 마케팅 및 경영기법을 배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란 점에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란 의견도 있다.
하이테크 투자자문회사 3TS벤처파트너의 지리 베네즈 체코 지사장은 “동유럽 기업들 중엔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세계 일류기업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인 기업들도 있다”며 동유럽 IT기업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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