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e비즈니스 부장 jsuh@etnews.co.kr
차기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의 성장동력이 IT와 연구개발로 바뀌면서 산업 클러스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물류와 금융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국제업무단지 건설 중심으로 짜여지던 송도특구 계획이 IT클러스터 개발로 선회한 것이다.
‘클러스터’란 지리적으로 인접한 기업·대학·연구소 등이 상호유사성과 보완성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창출하는 집단을 말한다. 예컨대 실리콘밸리의 성공은 캘리포니아의 지역산업, 주정부 기관, 교육 및 연구기관, 제조·장비·여행 등 관련 분야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결과다. 세계적인 클러스터들로는 실리콘밸리 외에 푸둥·중관춘(중국), MSC(말레이지아), 시스타(스웨덴), 울루(핀란드), IT2000(싱가포르)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IT에서부터 바이오·나노기술·콘텐츠 등 기업 단독으로는 비즈니스의 전개가 어려운 대규모 복합적 성격을 가진 첨단산업이 꾸려지고 있다.
클러스터는 대개 산업 발전 방향과 원천기술을 제시하는 비전제시자(VP), 이를 상업화하는 시스템통합자(SO), 부품과 요소기술을 비롯해 금융·교육·마케팅 등 지원서비스를 공급하는 전문공급자(SS)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 구성 주체의 경쟁력과 입지조건에 따라 클러스터의 유형은 대학·연구소 주도형, 대기업 주도형, 지역특화형, 그리고 구성 주체가 모두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실리콘밸리형 등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아직 370만평의 용지만 정해진 송도 IT클러스터는 어떤 방향으로 설계돼야 하는가. 구성 주체들은 모두 인위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용지가 저렴한 조건이라지만 가장 땅값이 비싼 테헤란밸리가 한국 최대의 벤처집적지로 부상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70년대 연구형 단지로 출범한 대덕단지가 30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전문공급자들이 생겨나고 있는 현상은 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실패로 돌아간 과거 ‘송도미디어밸리’ 개발 경험에 비춰 구성 주체 문제를 선결하지 않고 클러스터를 추진할 경우 송도는 또 한번 상처로 버려진 땅이 되고 말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송도 계획의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송도가 최고의 고급인력과 인프라가 몰려 있는 수도권을 배후로 하는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있을 경우 구성 주체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는 요인이다. 국내외 일류기업·대학·연구소 등이 최상의 조건으로 입주할 수 있는 경제특구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IT 인프라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특히 외국자본 유치에 큰 기폭제가 될 것이다.
산업클러스터는 과거 공단이나 산단과는 달리 구성 주체간 복합네트워크 창출 여부가 성패를 좌우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글로벌 플레이어를 지향하는 기업이라면 경쟁력 강화와 새로운 비즈니스 전개를 위해서는 클러스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기업간 경쟁이 점차 클러스터간 경쟁으로 확대되고 이는 곧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발생한 실리콘밸리와 달리 클러스터는 강력한 정부의 힘과 의지 없이는 추진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차기 정부가 고심 끝에 송도IT클러스터를 동북아 중심국가의 성장동력으로 삼았다면 그것은 과거의 실패와 현실 상황, 그리고 미래의 전망 등을 종합판단한 결과였을 것이다. 차기 정부는 이제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차분하고도 현실적인 세부추진계획을 준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중관춘이나 IT2000처럼 중앙정부가 역량있는 기업과 연구소, 그리고 자금유치에 팔을 걷어붙인 사례도 벤치마킹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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