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IT]2003 벤처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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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산업은 캐피털·인력·창업보육 등 벤처 주변 생태계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다. 올해는 그 어느때보다 벤처산업과 주변 생태계를 지키려는 각계의 노력이 분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정부 나름의 ‘생태계 보전 계획’도 있겠지만 주변 업계의 직접적인 요구에도 귀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벤처캐피털업계는 벤처캐피털시장에 대해 시장경제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되 그 안에서 정부가 제 몫을 다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캐피털업계는 그동안 정부의 벤처정책이 벤처기업에 직간접 금융을 무차별적으로 제공하는 형태였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캐피털업계는 이와 같은 정책이 벤처산업 초기에 창업 열기를 높이고 중견 벤처기업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긴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강조한다. 벤처산업 전반에 구조조정이 필요한 지금 직간접적인 재정지원은 부실벤처의 기업 생명을 연장시키고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

 캐피털업계는 정부가 코스닥·벤처투자 등 민간 벤처금융시장에서 자금순환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벤처산업을 시장논리에 맡기면서 동시에 민간 벤처 투자재원이 효과적으로 조성되고 벤처투자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이를 위해 각종 연기금의 벤처투자를 유도하고 코스닥 등록 및 퇴출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캐피털업계는 또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벤처캐피털들이 코스닥 등록에만 의존하고 있는 현재 투자수익의 회수창구를 M&A나 구주매각 등을 통해 보다 빨리 현금화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비상장기업간 또는 상장기업간 기업가치를 공정하고 신뢰성 있게 평가할 수 있는 전문평가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벤처의 산실인 창업보육업계는 최근 일부 우수 보육시설을 제외하고는 실적 부진과 자생력 결핍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창업은 벤처기업의 기본이자 전체 벤처산업의 폭과 범위를 확장시키는 결정적인 기업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벤처산업 침체 여파로 창업률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일부 창업보육업계는 향후 보육센터들이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량 벤처기업 및 예비창업자를 선별하고 이들이 연구개발은 물론 시제품 생산까지 해낼 수 있는 충분한 보육공간과 보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전문화된 매니저 교육, 우수 창업보육 프로그램 발굴이 계속 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일부에서는 정부가 창업보육센터(BI)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도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적용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운영 의지가 없는 BI를 과감히 퇴출하고 우수 BI를 확대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해 스타급 벤처기업의 산실로 지역 BI가 제대로 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민간이 융합된 하이브리드형 보육모델이 앞으로 이상적인 창업 보육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

 지난 수년간 BI 입주기업들이 겪은 고질적인 판로확보 문제도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좋은 기술 개발을 하고도 중소기업이라는 편견 때문에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BI 입주기업들을 위한 시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정부가 최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산·학·연 연계사업이 효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관계 정부 부처간 이견조율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여전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벤처업계를 포함한 국내 IT산업가 겪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해마다 악화되고 있는 심각한 인력난이다. IT 등 첨단기술력이 중심이 된 국내 벤처들은 이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고급두뇌를 중심으로 한 기술지식집약적 산업의 특성을 갖고 있는 벤처업계의 경우 우수인력 확보는 회사의 사활을 거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대책과 과학기술 우대정책 등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현재 벤처기업의 인력난은 벤처산업 침체와 거품 붕괴가 낳은 현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성과급 제도의 붕괴와 열악한 벤처 노동환경 등은 석박사 이상 고급두뇌들의 창업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문제가 벤처 활황과 함께 자연적으로 치유될 것으로 보는 한편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급인력마저 외국계 기업와 대기업에 빼앗기고 있는 현상황이 한동안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정부가 지속적인 고급인력 양성정책과 해외 우수인력 유치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한편 핵심인력 확보도 중요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묶어내는 네트워크 구축도 이에 못지 않게 고려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핵심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실리콘밸리의 사례처럼 전문가들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공공에서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2003년 벤처지형 어떻게 바뀌나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TV 합동토론회에서 벤처산업을 한국 사회가 미래기술경제사회로 이행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자신의 벤처관을 피력했다.

 노 후보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정경유착, 각종 비리 등 부정적인 면보다 디지털경제시대의 도래와 지식기반사회를 앞당기는 데 벤처산업이 원동력이 됐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무게를 더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적으로 그가 이끄는 새 정부의 벤처정책은 현정부의 실기를 보완함과 동시에 질적인 성숙, 경제민주화를 고려한 활성화로 방향을 잡아갈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지난 5년간 정부 주도로 이뤄진 벤처활성화·육성정책이 향후 대폭 민간 주도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정부의 벤처정책 주무부서인 중소기업청 벤처기업국 서영주 국장은 “앞으로 5년 후 정부 주도의 지원시책이 종료되는 시점에 벤처산업이 시장원리에 순기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주변 생태계를 질적으로 내실화하는 정책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옮기고 벤처산업이 자생력을 갖추도록 간접지원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정부 벤처정책 담당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창업에서 기술 육성으로 초점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방만하게 정립돼온 벤처 개념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서 최근 힘을 얻고 있다. 전통 중소기업과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무늬만 벤처기업들로 인해 기술혁신형 기업만을 벤처기업으로 우대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당시 노 후보 측은 기술보험제도와 거래활성화 등 제대로 된 새로운 기술평가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주장했다.

 북미 조달시장을 포함한 국내외 정부조달시장 진출 지원 및 확대를 통한 벤처기업 제품판매촉진 사업도 대규모로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펀딩을 통한 벤처 몸불리기보다 판매와 수출을 통한 살찌우기를 통해 벤처를 육성하겠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국방부 구매조건부 기술개발비지원사업이나 해외 수출인큐베이터 확대 강화, 지역 콜센터 추진을 통한 벤처기업 매출확대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정책을 확대·보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창업보육센터 확장 지원, 창업대학 설립, 보육매니저 역량 강화를 통해 창업보육사업에 내실화가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방 벤처육성촉진지구 확대, 산·학·연 연계사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이 강화된다.

 한편 내년부터는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대신 밴처캐피털시장 활성화를 통한 간접 육성 정책이 꽃을 피울 것으로 보인다. 모태펀드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수많은 파생펀드를 만들어 운영함으로써 자금난을 겪고 있는 우량 벤처기업을 선별, 집중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관측된다. 펀드 운용기한도 현행 5년에서 확대하고 M&A시장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는 등 캐피털업계가 안정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이밖에 코스닥시장의 경우 불량기업에 대해 강력한 퇴출정책을 펴는 한편 보호예수제도를 개선하는 등 건전화 방안에 대한 구체적 안이 내년 상반기 중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벤처기업에 대한 연기금 투자 비율이 높아지도록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 기준 완화와 운영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노 당선자 진영의 정책이 특히 눈에 띈다.

 행정수도 이전 추진과 함께 지방 벤처산업 활성화 정책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벤처기업 수도권 집중화와 투자 지역편중 문제도 새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새 정부는 이를 위해 현재 24개에 이르는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를 지방으로 더욱 확대하고 지역별 벤처전용펀드 결성을 주도해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이외 지역 중 벤처기업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대덕밸리의 경우 행정수도 이전사업이 지역 벤처기업들에 제2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박근태기자 runrun@etnews.co.kr>